캘리포니아는 정말 길었다. 2,700km나 되니 PCT의 반 이상을 캘리포니아를 벗어나려는데 써야했다. 4월 말 봄에 시작한 PCT였는데 어느새 8월 중순 가을을 향해가고 있었다. 길가에는 누르스름한 풀들과 꽃들이 PCT에서의 시간도 흘러감을 알려주었다.
PCT를 마친 뒤 나만의 책을 내고 나서 인생에서 조금 재밌어진 점은 책을 본 친구들과 PCT에 대한 이야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형, 책이 후반분에 갈수록 좀 우울해지는 것 같든데요."
"형수님 진짜 고생 많았을 거 같은데 진짜 잘하세요."
같은 이야기들이다. 사실 책을 쓰면서 내가 힘든걸 좀 어필하고 싶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은진이가 고생이 진짜 많았을 거라며 혹자는
"야이 개새끼야! 은진이에게 잘해!"
라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ㅋㅋ
맞다. 후반부에 갈수록 우울함이 좀 커지기도 했다. 혼자서 그냥 깊은 산중을 매일같이 걷는 것이 낭만적으로 보였지만 막상 내가 그 상황에 처하게 되니 낭만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그럼에도 이제는 드디어 길고 긴 캘리포니아의 끝이 보이고 오레곤이 보이기 시작해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레곤을 들어가기 전 마지막 마을인 세이아드 밸리(Seiad Valley)는 굉장히 작은 곳이었다. 마을 안에 캠핑장이 있어 하루에 15달러를 주고 묶게 되었다. 캠핑장에는 몇 동의 텐트가 있었는데 캐나다를 향해 가는 아저씨 1명 , 그리고 한국인 여자애 1명, 멕시코를 향해 가는 한 커플까지 총 4명이 있었다.
한국인 여자애는 은진이와 헤어진 샤스타 마을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봤었는데 그 이후로 하루에 40km 이상씩을 매일같이 걸어왔는데 나랑 만났으니 이 여자애도 매일같이 40km 이상씩을 걸어온 것이었다.
캠핑장에서 아저씨 한명과 친해졌는데 아저씨의 이름은 엘, 아들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가했다가 그 곳에서 죽었다고 했다. 말하는 센스가 엄청난데다 유쾌하기까지해서 생각지 못했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다음날, 캠핑장에서의 짧은 인연들을 뒤로하고 다시 캘리포니아의 끝을 향해야했다.
거리상 하루만에 주 국경까지 닿을 수는 없었고 하루 더 산중에 머물고 나서야 오레곤 국경에 닿을 수 있었다.
평평한 길을 따라 쭉 걸어가니 어느새 오레곤/워싱턴까지의 거리가 적힌 표시판이 나오고 나무에는 오레곤과 캘리포니아의 경계라며 나무판이 걸려 있었다.
아... 드디어
남들보다 조금 오래 걸리긴 했지만 어떻게든 여기까지 왔구나. 이제 1,600km만 더 견디면 기나긴 여행도 끝이구나. 아직 막막하긴 하구나. 뿌듯함과 막연함과 기쁨과 걱정과 여러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오갔다.
사진을 잠시 찍다가 다시 또 길을 나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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