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8일만에 은진이를 만나는 날이다.
우리의 약속 장소는 케네디 메도우 노스(North)
케네디 메도우 사우스(South)는 사막이 끝나고 시에라가 시작되는 지점이고,
케네디 메도우 노스(North)는 아직은 여전히 시에라이지만 곰통을 더 이상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지점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며칠 전 뮤어 트레일 렌치에서 만났던 친구가 지나갔다.
PCT 길 위에서는 모든 물자가 귀했다. 특히나 담배가 그랬는데 어느새 나에게는 담뱃잎만 있었고 종이는 없었다.
미국의 담배값이 비싸서 담배와 종이를 따로 사서 말아폈다.
"혹시..."
그는 나의 표정을 알아보고 바로 담배 종이를 꺼내들었다. 그도 담뱃잎이 다 떨어지고 종이만 한장이 남았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담배 한까치를 나눠피었다.
친구는 먼저 떠나고 어젯밤 잠자리를 정리하고 출발 준비를 마쳤다.
16km 동안 물이 없다는 얘기에 항상 물이 풍부해서 0.5L마 들고 다니던 물을 시에라에서 처음으로 2L의 물을 지고 출발했다.
물도 오랜 구간 없었지만, 나무도 없는 구간을 처음으로 지났다. 뭔가 어색했다. 어느 순간에 또 시에라에 적응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사막같은 기분이 들어서 반갑기도 했다.
산을 빙빙 둘러 오르게 만든 길을 '스위치 백(Switch Back)' 이라고 한다. 긴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스위치 백을 걷는게 싫어 가로 지르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ㅋㅋ 미끄러져서 택도 없었다. 결국 빙빙 둘러 가야했다.
정상에 오르고 나니 시원하고 아름다운 전경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민둥산 너머 푸르고 빽빽한 산을 보니 탁 트인 곳에서 바라보니 마음도 탁 트였다. 이후로는 계속 정상의 능선을 따라 걸었다.
어제 아주머니한데 음식을 받았지만 넉넉하다고 생각하고 마구 먹었더니 점심이 되자 음식이 부족해졌다.
부족해진게 아니라 다 떨어져 버렸다. PCT에서는 몸에 연료가 떨어지면 걸을 수가 없었다. 그냥 기운이 쫙 빠져버렸다.
더 이상 걸을 힘이 없어지자 좀비가 되어 마지막 구간을 기다시피해서 소로나 패스에 도착했다.(소로나 패스는 케네디 메도우로 들어가기 위해 히치를 할 수 있는 도로가 있다.) 도착하니 소로나 패스에서 트레일 엔젤이 먹을 것을 가지고 와 나눠주고 있었다 ㅋㅋ 이게 웬 횡재냐며 빵이랑 음료를 엄청먹고 히치해서 드디어 케네디 메도우 노스에 들어갔다.
케네디 메도우 노스는 마을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하니 거대한 캠핑장이 있는 곳이었다.
은진이는 내가 도착한 후 한시간 정도 더 있다 도착했는데 영어도 잘 못하는 애가 LA에서부터 이 시골까지 알아서 잘 찾아오는데 참 신기했다. 은진이는 두손 가득 LA 한인타운에서 막걸리, 삼겹살, 한국라면 오만가지를 사들고 와 둘만의 파티를 가졌다.
오랜만에 은진이를 만나니 더 없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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