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얼굴이 두꺼운 편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에 크게 망설이지 않는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가서 물어보고 담배가 없으면 담배도 빌려달라고 하고 잠잘 곳이 없으면 재워달라고도 하고 그렇다.
사막의 낮은 미친듯이 더웠다.
며칠 전 음료수를 도둑질 해먹었지만 바로 다음 날 아침이 되어 걷기 시작하면 채 5분도 되지 않아 또 음료수 생각이 가득해졌다.
'가능하겠다...'
긴 사막의 한 구역이 끝이나고 도로를 만나자 바로 배낭을 풀어놓고 차를 세우기 시작했다.
한 대, 두 대 많은 차들이 그냥 지났지만 포기하기는 일러 좀 더 힘을 내어보았다.
"끽~~!"
'됐다...'
"안녕하세요. 너무 목이 말라서 그런데 미안하지만 음료수 하나 있으면 좀 얻어 먹을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운전석의 사나이는 뒷자석에 있던 음료수를 집어 건내주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은진이에게 달려가 환하게 웃으며 음료수를 건내니 은진이도 웃어보였다. 잠시 휴식을 갖고 다시 길을 나섰다.
도로를 건너자 새로운 사막산이 시작되었다.
사막에서는 사실 가파른 오르막은 별로 없었다. 다만 찌는듯한 땡볕아래 걷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도 또 하루를 버티고 좁은 공간에 우리의 보금자리를 펼칠 수 있었다.
신발 뒤꿈치를 도려내고 난 이후로 엉뚱한 근육에 힘이 들어가다 보니 오른쪽 앞쪽 정강이와 왼쪽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간은 자고 일어나면 아팠던 것이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졌다.
그런데 드디어 아침에 일어나서 발목을 돌려봤는데 느낌이 싸했다. 몸에 생기는 이상은 확실히 특별한 느낌이 있다. 정강이 근육인지 인대인지 계속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 나서 불안했는데 텐트를 나와 걸어보니 아파서 걷기가 힘든 지경이 되었다.
은진이를 먼저 보내고 텐트를 접고 뒤따라 걸어도 속력이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스킵을 할 생각은 정말 하나도 없었는데 마을까지 30km를 차를 얻어 타고 가야겠다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마을도 차가 다니는 도로가 있어야 갈 수 있어서 일단은 무조건 도로와 만나는 지점까지는 걸어야했다.
보통 쉬는 시간 포함해 시속 3km가 조금 넘게 나왔는데 열심히 걷는다고 걸어도 시속 2km가 나오지 않았다. 은진이가 혹시 이런 사정을 모르고 멀리 가버렸으면 어떻하나 걱정을 해봤지만 따라주지 않는 몸에 속상한 마음만 커졌다.
그냥 무작정 걷다보니 드디어 희망이 보였다.
'Water Point'
물포인트가 있다는 표지판을 보니 은진이가 왠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고 주황색의 잠바를 입은 여인이 무릎 사이 고개를 파묻고 자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물 포인트에 물을 가져다 놓으려면 차가 다니는 길이 있어야 가능하기에 차도를 따라 걸었다. 스킵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이 몸상태로 30km를 걷는 건 불가능이라 도움을 받기로 했다.
한참을 걷다 드디어 집이 보여 밖에서 소리치니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마당으로 들어가니 어느새 커다란 개 두마리가 큰 소리로 짖어대길래 무서워 작은 건물로 들어갔더니 세탁실이었다.
'아...'
개들은 쉴새없이 한참을 짖어대다 차 소리가 들려오자 조용해졌다.
살았다 싶어 밖으로 나갔더니 덩치 큰 남자가 우릴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아... 뭐야 이거...'
두 손을 번쩍들고 천천히 상황을 설명하고나니 그가 총을 거두었다. 몸도 아픈데 총질도 당하고 은진이는 눈물을 그렁그렁 거리고 나도 소리치며 울고 싶었지만 그래도 살았다는 안도감이 기쁘기도 했다.
상황이 종료되자 뒤에 있던 덩치 큰 남자의 아내 Star는 웃으면서 우리를 마을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우리의 PCT 첫 마을 Warner Springs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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