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에서 씻고 잤더니 오랜만에 게운하게 일어났다.
자기 전 바람이 몰아치고 비도 날렸는데 역시나 아침에 일어나니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다. 사막이라 하지만 산이랑 사막이랑 섞여 있기때문에(굳이 표현하자면 사막산이라고 해야하나) 산에 구름끼는건 당연할지도..
캠핑장을 벗어나 트레일로 들어가는 길 전, 산장이랑 옆에 작은 마트가 있었다. 마트에 들어가니 정말 미국 영화에서나 본 분위기가 났다. 내가 이런 곳에 몸을 둘 수 있다는 것이 또 신기했다.
물가는 얼마나 하는지 보니 피자 한조각에 4달러 이렇게 해서 깜짝 놀랐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비싼것도 아니였던거 같은데 그 당시에는 항상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나와서 조금 쉬다보니 하이커로 보이는 커플이었는데 남자가 깁스를 하고 있길래 물어보니 3일만에 다리를 다쳐 일주일째 산장에서 쉬고있다고 했다. 나도 발이 아파 미칠 지경이었는데 그가 느낄 마음의 부담과 걱정이 조금 이해가 됐다.
커플을 뒤로하고 계속 걸었다. 초반에는 은진이와 항상 거의 붙어서 걸었다. 후에는 서로의 속력이 다른데 맞춰 걷는 것이 서로 힘이 들어 각자의 속력에 맞게 걸었다. 대신 12시까지만 걷고 앞선 사람이 기다리는 식으로 약속을 정하고 걸었다.
오후에 조금 날이 맑아지는듯 하더니 한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구름이 잔뜩 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바람이 미친듯이 불어 날아갈거 같았다. 가늘게 비가 오더니 빗방울도 굵어지기 시작해 결국 텐트를 치기로 했다.
비를 맞으며 텐트를 치고나니 눅눅해진 텐트 속에서 젖은 옷을 입고 있자니 찝찝해 미칠 지경이었다. 아직은 모든게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기에 불편하기만했다. 점심도 먹는둥 마는둥해서 배고픔에 바로 라면을 끓였다. 사리곰탕에 무거워 빨리 해치워야할 스팸 그리고 라면스프를 넣어 끓였더니 국물이 순대국밥 같았다.
참고로 오뚜기 대용량 라면스프를 챙겨가면 정말 유용하다. PCT를 하면서 한국라면을 구하기가 어려워 나중에 면만 사서 스프 넣어먹으면 꿀이다.
어떤 한국인 하이커들은 몇달치 음식을 한국에서 가져와 여러 보급지에 택배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귀찮음을 감수하기 싫어 또 사람 사는 곳은 어떻게도 일은 해결된다고 믿었기에 처음에 가져온 한국 음식 일주일치를 챙겼고 나머지는 750km 지점에 보내고, 또 거기서 일주일치 챙기고 남는거 1800km 지점을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은 끝냈다.
PCT 하기전에 보급에 대해서 제일 걱정했는데 PCT를 완주하고 뒤돌아보니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마을을 만날 수 있어 현지 마트에서 보급하는걸로 충분했다. 그래서 그립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부터 음식을 챙겨갈 필요도 없다. 다만 라면스프 대용량은 2개 챙겨오는걸 추천.
라면을 먹고 누워있자니 비는 그쳤다. 시간도 아직 한낮이라 다시 출발할까 고민했지만 젖은 텐트를 다시 접는게 싫어 일찍이 하루를 마쳤다. 이후에는 4개월 넘게 비를 한번도 만난적이 없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에 여름만 되면 불이났다는 뉴스를 매년 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리곤 챙겨온 아이패드로 드라마를 보며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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