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을 꿈꾸던 진시황제의 무덤을 지키는 병사들의 토용이 묻힌 병마용
1974년 중국 서안 외곽의 시골마을에서 우물을 파기 위해 땅을 파던 농부에 의해 발견된다.
허수아비라는 뜻의 ‘용(俑))’은 장례에 부장품으로 쓰기 위해 나무나 진흙, 돌, 도기 등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으로 병마용은 토용을 말하고 병마용갱은 토용이 있는 굴을 의미한다.
병마용은 시안에서 35km, 화청지에서 5km 떨어져있다. 시안역에서 306번타면 7원에 간다
화청지를 먼저가든 병마용을 먼저가든 선택의 문제이나 우리는 화청지를 보고 병마용을 향했다.
토굴은 3개, 박물관이 하나, 인터넷에서는 순서는 2번 → 3번 → 1번 → 박물관 순으로 보면 좋다고 하던데 실제로 관람하고 나니 그 말이 맞았다.
사진에서만 교과서에서만 보던곳을 드디어... 이상한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2번굴 먼저을 먼저 들어갔다. 부서진 병마용들의 널부러져있는데 복원중이라 한다.
2번굴
1번굴을 나중에 가라고 한 이유는 1번굴이 가장 화려하기 때문이다. 원래 화려한 것을 보고 나면 역치가 커지기 때문에 그 감동은 반으로 줄어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2번굴을 처음 봤을 때도 감동은 상당했다.
교과서에서 보던 병마용들의 모습, 보통 사람보다 조금 더 컸다.
3번굴
2번굴을 보고 났더니 상대적으로 자그마한 3번굴은 자그마하게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널부러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으나 문화재에 대한 중국의 애착으로 복원에 심혈을 기울인다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1번굴
드디어 교과서에서 많이 보던 1번굴을 방문하였다.
우물을 파다 처음으로 발견한 농부는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까?
규모와 웅장함에 입이 떡 벌어진다.
현재에 이런걸 만든다면 욕먹을 지도자가 되겠지만 역사에 미친놈 하나쯤은 있어야 후세가 덕을 본다는 생각도 들었다 .
한참을 1번굴을 관람 후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박물관에는 병마용 관련 여러 유물들이 있었다. 중국은 이런 문화를 가졌다는 것에 자부심을 충분히 느낄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병마용이 나왔다면 난리도 아주 큰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세계인들이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실물에서 느껴졌다.
정말 병마용갱은 세상에 나서 죽기 전에는 꼭 한번 봐야할 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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