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T, Pacific Crest Trail] 4화. 초심자의 행운... 그런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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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국 PCT(Pacific Crest Trail)/South California

[PCT, Pacific Crest Trail] 4화. 초심자의 행운... 그런건 없다

by 빵호빵호 2022.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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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하루에 거의 30km에 가까운 거리를 걷다보니 누우면 뻗듯이 잠이 들었지만 새벽에 자주 깼다. 그리고 새벽에 깰 때면 어김없이 발이 터질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신발이 한국에서 신을 때는 조금 여유가 있었는데 PCT 이후로는 탱탱 부은 발이 신발이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탱탱 부은 발을 신발에 구겨넣어야 했는데 발가락이 아파 견딜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이야 괜찮지만 앞으로 6개월을 걸어야하니 엄두가 안나 결국 가지고 온 슬리퍼를 신어야했다. 그렇게 슬리퍼를 신고 1시간 정도 걸으면 20kg에 가까운 배낭 무게의 하중을 슬리퍼 신은 발이 견뎌주질 못했다. 결국 신발 뒷쪽을 칼로 도려내고 신었다. 신발 앞은 막혀있지만 뒷쪽이 트여있다보니 발을 제대로 못잡아 주는건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슬리퍼 신고 걸을면 혹시 슬리퍼 끊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안고 걸어야 했는데 그 보다는 나았다.

슬리퍼 신고 하이킹이다

며칠간 오전에는 구름이 잔뜩껴 흐리더니 정오쯤 되면 언제 그랬냐는듯 맑아졌다. 맑은 날씨는 기분을 좋게해줬다. 영국인들이 우울한 이유도 1년에 맑은 날씨가 별로 없어서라고 했다. 반면에 캘리포니아인들이 쾌활한 이유는 1년 내내 날씨가 좋기 때문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었다.

(좌)처럼 흐리다가도 (우)처럼 금새 날이 게인다 ​ 
 

 

드넓게 펼쳐지는 전경에 속이 시원했다. 그렇게 걷다가 다시 구름이 좀 끼자 노곤해져서 그냥 길가에 매트를 깔고 배낭을 던져둔채 낮잠을 청했다. 이런게 참 자연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오면 그냥 길가에 매트를 깔아버린다 ㅋㅋ

 
 
맑은 캘리포니아의 날씨 ​

 

잠결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지만 모자로 얼굴을 덮어 모른척 계속 잠을 청했다. 그러다 뒤따라 오던 은진이가 도착해 흔들어 깨워 같이 조금 더 쉬다 다시 길을 나섰다.

거짓말처럼 또 날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

 

처음 출발할 때는 스캇의 집에서 물을 잔뜩 받아와 출발했지만 둘째날부터는 사막 속에 흐르는 작은 냇물을 정수해 마셔야했다. 한국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물이 많이 흐르지 않아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물이 있는게 천만다행인지라 감사히 정수했다. 그리고 또 며칠 하다보니 익숙했고 당연하게도 여겨졌다.

이렇게 졸졸 흐르는 물을 정수해서 마셔야한다

 

오늘은 MT. Laguna라는 곳에서 잠을 청할 생각이었다. 작은 커뮤니티로 PCT를 시작하고 실질적으로 맞는 첫 문명이었다.

Guthook App은 PCT 관련 앱인데 4,300km에 달하는 긴 길에 물이 있는 곳은 어딘지 캠프 사이트는 어딘지 마을은 어딘지 이런 것들이 표시되어 있었고 GPS 기반의 앱이라 검정색 PCT 길위에 나의 위치를 알려주는 고마운 앱이었다. 그래서 그 앱을 통해서 사전에 오늘의 목표를 정하고 물 포인트를 계산하여 물을 받곤 하였다.

미국은 거리 단위로 마일을 쓰는지라 1/4mile, 400m 정도만 가면 Mt. Laguna Community다

 

캠프 사이트에 도착해 신발을 벗어보니 역시나 발이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3일만에 발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PCT 하는 첫째 주, 둘째 주까지는 다들 하나같이 물집 이야기를 한다. 영어로는 Blister라고 하는데 하이커들이 모여 얘기하는 곳에 가면 '블리스터'라는 단어가 엄청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다들 물집이 난 자리에 또 물집이 나고 발이 엄청나게 붓기때문에 신발 사이즈가 평소보다 2~3 업 하는것이 좋은 것 같다.

끊어야지 생각하고 사지 않았던 담배를 3일만에 캠핑장에서 만난 다른 하이커에게 얻어 피게 됐다. 실컷걷고 텐트치고 피는 그 한대가 천국이었다.

훗날 은진이는 오빠는 담배라도 피지 나는 뭐가 있냐며 했다. 내가있잖아~

오늘은 캠핑장에서 자는거라 돈을 내야 했는데 우리까지 하이커 3팀이서 25불을 지불했다. 그래서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하고 휴대폰 충전도 하고 역시나 문명이 좋았다. 다만 문명 안에서는 그걸 느끼기 힘들뿐이지만.. 또 하루가 갔다.

하루하루는 참 안가도, 뒤돌아 보면 빨리 지나와 있는게 세월인가 보다.

Mt.Laguna 캠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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