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T, Pacific Crest Trail] 51화. 몽환
본문 바로가기
2018년 미국 PCT(Pacific Crest Trail)/Sierra

[PCT, Pacific Crest Trail] 51화. 몽환

by 빵호빵호 2023. 1. 20.
728x90
728x90

PCT 가기 전에는 PCT가 어떤 곳일까 궁금해서 사람들의 블로그를 보면 글들이 천천히 올라와서 애가 닳았는데 그 마음이 지금은 이해가 간다. 일상을 살아가다 보니 바빠서 블로그를 쓸 힘도 여유도 없다.

사회 생활을 하며 사람들이 사람에 치이는게 싫다고들 하는데 나도 그랬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이랑 며칠동안 말도 하지 않고 혼자서 지내다보면 내가 있는 곳이 현실인지 꿈인지 도대체 알 수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건 알고있지만 한 곳을 맴도는 기분이 들었다.

 
 
Tuolumne 폭포의 시원~한 전경 ​

 

툴러미 폭포 끝에 보이는 시에라의 돔

퉐러미 폭포를 지나서 다시 오르막 내리막의 반복이 시작되었다.

PCT를 하는 힘의 원동력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생각'이었다. 과거에 대한 추억, 삶의 중요한 가치에 대한 생각, 미래에 대한 생각, 너무나도 다양했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는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소중한 기회였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무언가를 생각할 여유가 정말 없었다. 너무 한가했기에 할 수 있는 PCT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그럼에도 대화할 사람없이 생각만 끊임없이 하다보니 내가 현실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몽환 : 꿈과 환상이라는 뜻으로, 허황한 생각을 이르는 말. 혹은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이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 세상 모든 것이 덧없이 느껴졌고 꿈과 환상처럼 느껴지기만했다.

물줄기에는 징검다리를 건너야한다. 종종 빠져서 젖은 신발로 다니는 경우가 많다

PCT 길을 1,500km를 넘게 와서 많이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종종 길을 잃는다 ㅋㅋ ​

 

PCT의 좁은 길을 따라 걷다보면 너무 한가하고 심심해서 할 짓이 없어 종종 셀카를 찍곤했다.

처음 출발할 때 머리가 꽤 짧았는데 3개월 정도 지나다보니 어느새 머리가 많이 길었다. 이번 참에 PCT를 마칠 때까지 6개월을 길러보기로 마음 먹었는데 머리가 자꾸 간지러워서 긁게 되서 불편했다.

매일 해를 달고 살다보니 아재이긴 하지만 더 아재가 되었다.

 
 
 
 
 
오우 부담스럽지만 귀엽나유? ㅋㅋ ​

 

미국에는 산 중에 호수만 수천개라고 한다

시에라는 긴 오르막을 올랐다 긴 내리막을 내렸다 그렇게 산을 넘고 넘었다.

긴 내리막을 내리고 커다란 강을 하나 건너야했다. 강을 건널만한 포인트가 없어 한참을 헤매이다 통나무 다리가 있길래 조심조심 걷는데 그만 나무 위에서 그대로 다리가 벌어지면서 다리만 쏙 빠져버렸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한데 까닥해서 옆으로 넘어졌으면 카메라가 빠질뻔했다.

속으로는 '시발, 시발' 했지만 내심 너무나도 감사했던..

젖은 신발과 양말, 옷을 정리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제부터는 다시 긴 오르막의 시작이었다. 시에라에서는 보통 하루에 큰 산을 2~3개 정도 넘으면 하루에 30km 정도씩 걷게 됐다.

오늘은 이미 2개를 넘었으니 이제 마지막 하나만 오르면 오늘의 오르막은 끝이라 힘을 내보았다. ​

 
 

Benson Pass 정상에 올라 잠시의 휴식을 마치고 이제는 목이 좋은 곳에 잠자리를 구할 때까지 다시 걸어야했다.

Benson Pass

영화 와일드의 한 장면같다

호숫가 근처를 지나는데 한무리의 관광객들이 나를 불러세웠다.

"음식은 넉넉히 있어요?"

"주시면 고맙죠."

영리하게 대답해야했다. 구차하지 않게 승낙하는 나만의 비법을 체득했다. 시에라에서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고파 배낭이 가득차도 주는 음식은 마다할 수 없었다.

조금 더 걸어갔더니 PCT 하이커들이 한무리 있어 오랜만에 사람들 곁에서 잘 수 있었다.

세상은 누군가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었다. 이럴 때만 그래도 꿈에서 잠시 깨어나 현실을 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산중 호수에서 낚시를 즐기는 아저씨 ​

 

또 하루가 간다
728x90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