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T, Pacific Crest Trail] 52화. 1,000 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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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국 PCT(Pacific Crest Trail)/Sierra

[PCT, Pacific Crest Trail] 52화. 1,000 마일

by 빵호빵호 2023.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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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니 정신적으로 살 것 같았다.

독일에서 온 쥬디스는 PCT를 하며 미국인 남자친구가 생겼다. 사막에서부터 종종 보곤 해서 꽤 친해졌는데 남자친구가 안보이길래 어디갔냐고 물어보니 둘은 그냥 자기 속도대로 걷는다고 한다 ㅋㅋ

정말 서양인들은 겁나 쿨하다 ㅋㅋ

호수 옆 좋았던 보금자리

복어처럼 생긴 바위

수년간 누군가들이 나무에 나무를 더한 다리, 참 튼튼한 나무 다리다 ​

 

지도의 거리상으로 보면 이제 시에라도 거의 끝이 나는 것 같았지만 풍경을 보면 아직은 그래도 시에라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커다란 바위 위의 침엽수림'

시에라는 나에게 그런 곳이었다.

커다란 바위산에 빽빽히 자라는 침엽수림, 나에겐 시에라가 그런 곳이다

긴 길을 지나 다시 또 하나의 Pass를 넘어야했다.

Pass를 지나기 전 앞서가는 여자 하이커가 하나 있었는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걷자니 영화 '와일드'의 여주인공도 어쩌면 저런 모습을 하며 걸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어쩌면 나도 다른 하이커에게는 저런 모습으로 비춰질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은 전혀 보지 못하고 그냥 앞만 걸어가는 사람들이었다.

 

 
 
나도 누군가가 이렇게 사진 찍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아쉽다

도로시 레이크를 지났다.

호수 이름이 참 아름다웠다. 이름만큼이나 풍경도 아름다웠고 이제는 도로시 레이크 Pass를 마지막으로 Carson Pass 하나만 넘으면 시에라의 Pass는 모두 넘는 것이었다.

배는 안고팠지만 괜히 호수 옆에 앉아서 점심을 먹으며 멍하니 호수를 바라봤다.

 
 
이름만큼이나 풍경도 아름다웠던 도로시 레이크 ​

 

점심을 먹고 한참 걸으니 금새 배가 고파졌다. 근데 문제는 음식이 바닥이 났다는 점. 그래서 또 구걸을 시작했다.

물론 이럴 땐 외관이 말끔한 사람들에게만 해야한다. 같은 처지의 하이커들의 식량을 얻어 먹을 순 없었다. ​

"아주머니 배가 고파서 그런데 음식 여유분 좀 있으면 주실 수 있어요?"

"잠시만~"

하더니 아주머니가 가방에서 잔뜩 먹을걸 꺼내줬다. 특히 보기부터 비싸보이즌 치즈가 정말 맛있었다. 대게 단기로 하이킹 오는 사람들은 음식이 여유가 많은 편이라 쉽게 나누어 주었다. 물론 없어서 못주는 사람도 있었다.

시에라에서는 다음 마을까지 식량을 준비할 때 하루 정도 더 여유있게 가져왔는데도 항상 모지랐다. 더 챙겨오고 싶어도 일주일 이상의 음식을 가져오며 그만큼 배낭의 무게가 부담스러워 많이 가져올 수는 없었다. 시에라에서는 열량 소모가 상당히 컸다.

배낭 속의 모든 음식을 나눠준 고마운 아줌니

​아주머니와 헤어지고 얼마지 않아 1,000마일 지점을 지났다.

1마일은 1.6km이니 1,600km 정도 걸어왔다. 4,300km의 PCT이므로 아직도 대량 2/3가 남았다.

 

대단한 PCT다 정말.

시작하고 한 1,000km 까지는 100km 지점 지날 때마다 뭔가 가슴이 웅장해졌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전혀 감흥이 없더니 이제는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사람은 이렇게 무뎌지는가보다.

1,600키로를 지난다 ​

 

내일이면 드디어 은진이를 만나는 날이었다.

최대한 마을에 빨리 들어가려고 음식도 충분히 생겼겠다 늦게까지 걸으려고 했는데 계곡에 이상한 종이가 보여서 보니 10마일이나 물이 없다는 쪽지였다. 도저히 16km를 더 걷기는 싫고 힘도 없어 그냥 일찍이 텐트를 쳐 버렸다. ​

이렇게 친절하게 하이커들이 다음 하이커를 위해 정보를 남겨두기도 한다

1,000마일을 매일같이 함께 한 소중한 신발 ​

 

일찍 텐트를 친 탓에 몇 몇의 하이커들이 옆을 지났다.

언제나 선택의 문제였다. 나는 물없이는 걷지 않기를 선택했고 그들은 물없이도 걷기를 선택했다.

몇몇의 하이커들을 떠나보내고 배가 고파져 쭈그려 앉아 라면을 끓이다가 잠깐 다리를 펴는 사이 코펠을 차버려 밥이 쏟아졌다.

"씨이발~!!!!"

아무도 알아들을 사람이 없어 시원하게 욕을 퍼붓고는 밥알을 털어서 먹을만한건 다시 넣어서 끓여먹었다 ㅋㅋ

수개월동안 안그러다가 꼭 은진이가 없을 때만 이렇게 쏟아버린다.

꼭 은진이가 없을 때만 밥을 뒤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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