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4권 율리우스 카이사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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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로마인 이야기

[로마인 이야기] 4권 율리우스 카이사르 1

by 빵호빵호 2017.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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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단순히 세계사 책만 읽었을때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삼두정치, 주사위는 던져졌다, 유럽의 3대 정복자(카이사르, 샤를마뉴, 나폴레옹) 정도로만 알고있었지만

실제로는 400페이지가 넘는 책 2권을 할애할 만큼 영향력도, 또 알아야 할 것도 많은 사람이다

 

역사에 있어 한 사건에 대해 공부할때 앞, 뒤에 어떤 사건들이 있었고 당시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또 어떤 인물들이 연루되어있는지, 그 인물이 성장한 배경이나 성향은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총괄적으로 알아야 하기 때문에 방대하고 어렵지만 공부하고 나면 단편적인 이해에서 벗어나고

잘못된 편견에 휩싸이는 일이 없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4권에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탄생부터 유년, 소년, 청년, 장년, 중년시절 및 8년간의 갈리아 전쟁(사실상 전쟁 7년째인 알레시아 공방전 이후 종료되었다고 봄, 마지막 1년은 사후처리)과 루비콘강을 건너기 직전까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타나있다

 

먼저 카이사르가 태어나기 전, 후로 로마사회에 대해서 알아보면

그라쿠스의 농지개혁 시도,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 평민파의 마리우스와 원로원파 술라의 대결 이후

술라의 승리로 후 독재관 등극 및 원로원 제도 강화, 커져가는 로마제국과

귀족들의 기득권화와 빈부격차의 증가, 중산층 감소로 인한 군대의 양과 질 감소(로마는 재산에 따라 직접세인 병역의 의무를 함)

이민족의 침입 등의 여러 방면에서의 사건이 있었다

가진것이 많아 질수록 지키고, 유지해야 할 것도 늘고 그것은 신경써야 할 일도 많아 지고, 놓치는것도 많아진다것을 의미한다

원로원파와 민중파와의 계층간의 대립은 심화되고 있었다

 

술라와 마리우스의 싸움 후 피의 숙청이 이루어졌고, 그 중에 카이사르도 명단에 있었으나 로마에서는 카이사르 구명운동이 있어

결국 살려주기로 했으나 한가지 조건을 건 것은 킨나(민중파의 거물)의 딸과 이혼하라는 것이었으나 카이사르(민중파 마리우스의 처조카이자킨나의 사위)는 거부하고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지만

원로원파인 술라의 가치관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거나, 정략 결혼이지만 아내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함이었거나 절대자의 명력에 불복한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이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카이사르는 젊은 시절부터 성공해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 아니라 40대 전, 후로 하여 두각을 나타낸 대기만성형 인간이었다

속주 에스파냐의 회계감사관, 안찰관(공공시설물 관리)로 시작해 최고 제사장에 오른것이 38세 였다

 

소년등과 일불행이라는 말이 있다

어린 나이에 급재하고 성공하는 것은 3가지 불행중 하나이다, 한가지는 어버지 덕으로 좋은 벼슬에 이르는 것이며, 나머지 한 가지는 재주가 좋은데 글까지 잘 쓰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한 개인이 사회적으로 특히는 그것이 중요한것인 무언가를 이루다보면 오만해지기 쉬우며, 그것이 오로지 자신만이 노력으로 이룩한 결과라고 착각하기 쉬워 결국엔 파멸로 이르는게 아닌가 한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카이사르가 2천년이 지나서도 회자되는건 그가 걸어온 길이 말해주지 않나 한다

 

3두 정치의 한 축인 폼페이우스는 어린 시절부터 전쟁에서의 승리로 로마 시민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았고, 최고 영예로운 개선 장군도, 또 해적 소탕하여 이름을 더 높여갔다. 그러나 폼페이우스가 원로원파임에도 불구하고 원로원 중심의 공화정 체제는 한 인물의 영향력이 커지는것과는 공존하기는 힘들었다

 

또 다른 3두 정치의 축이자 카이사르의 최대 채권자인(카이사르는 부유하지 않았지만 빚에 대한 압박감도 크지 않았고, 돈에 대해 초월한 자세를 보였다) 크라수스는 아버지대에서부터 부를 쌓았고, 크라수스 또한 재물에 대한 감각이 좋았다. 일례로 불이 난 집에 화재 진압이 필요할때도 소방 인력을 가지고 있었던 크라수스는 기다렸다가 다 타면 싼값에 사는 등의 재물에 대한 감각(?)이 좋았던 만큼 인덕도 정치 감각도 조직력도 모든것의 부재였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남에게 보이는 행동이나 남에게 칭찬받는 것 자체에 중점을 둔다면 그것은 허영심이라 할 수 있으나

자기 자신의 내부의 무언가를 이루려는 욕망에 중점을 둔다면 그건 야심이다 그렇다면 전자는 폼페이우스, 후자는 카이사르다

카이사르는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권력을 쥐는것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고 집정관 선거에 나가게 되는 과정에서

선거에서 확실함을 기하기 위해 삼두정치를 조직하게 되면서 먼저 폼페이우스(해적 소탕시 모집한 자신의 군사들에게 농지분배와 오리엔트 재편성안을 승인 한다는 조건)와 크라수스를 끌여들여 집정관 당선이 된다

 

집정관 이후 갈리아 전쟁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총독의 자격으로 전쟁을 하는 동안 크라수스, 폼페이우스는 집정관을 역임하고 각각 오리엔트, 에스파냐 속주의 총독으로 가게 된다

크라수스는 파르티아와의 전쟁에서 목숨도 군사도 다 잃게 되고, 삼두에서 이두로 바뀐 상황에서 갈리아 전쟁에서의 승리로 인기가 높아진 카이사르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이 두려워진 원로원은 폼페이우스를 끌어들여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게 된다

원로원은 갈리아 총독에서 물러나 집정관에 선출하도록(군사력 해제)했고 카이사르는 거부해다

결국 원로원의 최종권고가 이루어졌고, 그 의미는 반역자로 규정하고 사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는데 이에 카이사르는 군사를 이끌고 '주사위는 던져졌다'며 루비콘 강을 건너게 된다

 

문재인 정부가 많은 부분에서 개혁을 시도하고 있고 검찰 내부에서는 문재인, 조국 xxx라며 법무부 장관 몇번 더 튕겨내면 지지율 하락과

자신들의 승부로 끝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고 한다

기득권층이 법의 논리를 앞세워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개혁에 대해 100% 도덕적일수 없는 사람의 약점을 물어 떨어뜨리는 것은 오늘날에

급작스레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라 권력이 발생하면서부터 같이 해온 역사가 아닌가 한다

하지만 반역자로 규정된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 유럽 3대 정복자로, 또 카이사르라는 이름이 황제를 의미하는 단어로 된 것은

기득권의 이익수호라는 속된 의미보다 로마의 융성, 국가 재건의 대의 명분이 그의 야심에 있기 때문이 아니였나 한다

그라쿠스 형제의 농지 개혁이 준비없이 시대에 앞서 나가 실패한 과거를 뒤돌아 카이사르는 개혁을 성공으로 이루어냈다

노무현 대통령의 과감한 개혁 시도가 실패함을 뒤돌아 검찰 개혁에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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