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3권 승자의 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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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로마인 이야기

[로마인 이야기] 3권 승자의 혼미

by 빵호빵호 2017.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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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은 포에니 전쟁이후 ~ 카이사르가 두각을 나타내기 전까지의 이야기로

그라쿠스 형제, 마리우스, 술라,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스파르타쿠스의 난 등에대해 다룬다

 

혼미

 

[명사]
1. 의식이 흐림. 또는 그런 상태
2. 하는 짓이나 됨됨이가 어리석고 미련하며 사리에 어두움
3. 정세 따위가 분명하지 아니하고 불안정함. 또는 그런 상태

 

역사를 이미 알고있는 우리는 책 제목을 통해 승리자 로마가 흔들리는 시기라는걸 짐작할 수 있고

이미 극복해서 더 큰 로마가 되어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포에니 전쟁이후 발행되었던 전시국채의 상환은 끝이났고, 점차 시국이 안정 되어가는 로마는 직접세를 폐지하게 되었다

직접세가 폐지되니 이득을 봤던 계층은 부유층이 되었고 남는 돈은 투자가 되기 마련이고,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투자는

땅에 집중되는 경향이 예로부터 있어왔다

 

또 로마의 경제는 농경 기반이었고, 군사력은 중산층들인 자작농들에 의해 국가가 운영되는 부분이 컸으나

로마가 확장을 통해 속주들이 생기고, 거기서 얻은 토지들을 로마인들에게 임대의 형태로 주고 세를 받았고

국유지의 이름으로 되어있었으나 상속과 매매가 가능한 실질적 사유지였다

 

2세기 무렵 시칠리아나 로마는 연전연승을 통해 노예들의 수가 많아졌고, 어느새 대농장의 생산력도 늘었고

땅의 소유 면적을 제한을 했으나 현재도 행행하는 것처럼 친족이나 노예들의 이름으로 토지를 소유하였다

 

로마는 재산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병역을 부과했는데 무산자들(프로레타리아)에게는

병역의 의무를 부여하지 않았다

부의 격차가 증가함에 따라 병역 의무를 해야할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병역의무를 해야할 계층의 재산 하한을 낮춰도

군사의 수가 부족해지자

 

형 그라쿠스 호민관에 선출되어 농지개혁을 시도한다

토지 소유 상한제, 부정 임차 농지 반환, 그리고 밀 농사가 아닌 올리브유나 포도를 경작하던 로마의 환경에 따라

초기비용이 많이 드는 점을 감안해 국고로 서민 지원 등 철저히 서민적인 개혁을, 또 그것이 무너져가는 로마를 살리는 길이었지만

기득권들이 언제나 그러하듯 자신이 늘린, 물려받은 권한을 놓치기 싫은 법이다

결국 그라쿠스 형제는 죽음을 당하고 마리우스라는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

 

젊은 시절은 평범하게 보냈던 그는 유구르타(누미디아의 왕-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와 동맹이 되어 카르타고와 전쟁한 아프리카 북부의 나라)와의 전쟁을 통해 두각을 나타 내었고, 평민이었던 그가 집정관의 자리까지 앉게 되었다. 중산층의 몰락에 따라 로마 군단의 질적, 양적 저하로 인해 마리우스는 군개혁을 통해 징병제에서 지원제로 전환하였고 무직자들도 직업 군인이 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실업문제뿐 아니라 개개인들의 존재 가치도 확립시켜 줄 수 있었고 그는 평민들을 대표하는 인물로

이후 갈리아, 게르만 인들의 침입도 막아내고 마리우스는 승승장구 했고 로마도 한동안 평화로운듯 했다

 

부강해지는 로마의 실정에 따라 로마 시민권자의 혜택 또한 늘어갔고, 마리우스의 군개혁을 통해 지원제가 된 군대는

로마 시민권자에게는 군인이 직업으로, 동맹시에는 의무가 되어버렸다

원래는 동맹시에게는 불리함이 없어 로마 시민권이 큰 효용이 없었으나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들은 시민권을 요구했고, 로마 시민들은

심지어 무산자까지도 기득권 수호에 나섰다

이에 호민관 드루수스는 동맹시 시민들에 로마 시민권 부여 법안을 발의했고 암살 당하면서 동맹시 전쟁의 발발을 피할수 없었다

 

전쟁 초기는 이탈리아에 유리했으나, 후반에는 술라의 활약으로 로마에게 유리해짐으로 종결되었다

집정관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율리우스 시민권법' 법안 발의로 동맹시에 로마 시민권을 부여했고 전쟁은 종결되었다

'리미니우스 법'의 귀족과 평민의 공직에 취임할 기회를 균등하게 함으로 계급간의 항쟁을 끝낸 법과 마찬가지로

획기적 법안이었고, 로마가 제국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길이었다

 

점차 술라의 세력은 커져갔고, 평민파의 마리우스와의 사이도 나빠지게 되었다. 결국 술라의 군대가 로마시를 점령하며 술라의 승리로 끝났고 평민파 사람들을 숙청했고, 그는 독재관이 되었다. 이후 그가 좋게 생각한 질서인 원로원으로 상징되는 소수 지도 체제로 사회 전반적인 부분을 개혁 후 은퇴하였다

 

힘으로만 일어선 나라는 얼마 가지 않아 금새 무너진다

로마는 스파르타나 마케도니아 처럼 힘이 강했던 나라도 아니였고, 서서히 성장하여

힘을 유지하기 위해 아테네에 인재들을 유학보내 선진 문명에 대한 공부와 자신들에게 맞는 형태로 제도를 도입하였다

분명 '펜은 칼보다 강하다' 힘으로 암묵적 협박을 하는 것은 순간적일뿐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당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인간 사이의 차별로 인한 내부 갈등이 발생했을때 리키니우스 법이나 율리우스 시민법권과 같은 법 제정으로 문제를 돌파하는

융통성 또한 로마가 가진 큰 장점이 아닌가 한다

노력의 정도에 따른 주어지는 보상에 차별은 용납 할 수 있으나,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차별이라면 또 그것이 지속되는 경우라면

그것은 용납되기 힘들어진다

 

로마는 지속적으로 성장했고, 때로는 커다란 문제에 부딪히나 해결해나감으로써 더욱 성장한다

이제 술라의 뒤를 잇는 폼페이우스, 로마 제일의 갑부 크라수스, 로마 최고의 영웅 카이사르의 이야기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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