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Ethiopia), 악숨(Aksum)] 에티오피아 고대 왕국
본문 바로가기
2019년 아프리가 종단여행

[에티오피아(Ethiopia), 악숨(Aksum)] 에티오피아 고대 왕국

by 빵호빵호 2022. 11. 18.
728x90
728x90

 

 

에티오피아 여행은 정말 힘들었다.

열악한 환경에 대우기를 맞아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에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면 구불구불한 길을 몇시간씩이나 달려야했다. 그럼에도 이동간에 아프리카의 지붕 답게 우기의 고원에는 연두색 가득한 풍경은 기가 막혔다.

곤다르에서 아침에 출발한 버스가 데바르크를 지나 쉬레(Shire)에 먼저 도착했다. 악숨까지 직통 버스가 없기 때문에 쉬레에서 한번 갈아타야 악숨까지 갈 수 있었다. (곤다르-쉬레 150비르, 쉬레-악숨 30비르)

역시나 우리만 짐값까지 받겠다는거 내린다니 웃으며 '야~ 그냥 타'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실 30비르 그냥 더 내도 되는데 그 때는 왜 그렇게 지기 싫었는지..

악숨 가는 길

악숨을 가는 길까지 경찰들의 검문이 잦았다.

악숨은 에티오피아 - 에리트리아의 국경에 인근한 지역으로 2019년 에티오피아의 총리 아비 아머드가 국경분쟁 종식으로 노벨상을 받았지만 그 전까지 수십년간 긴장 상태를 지속했고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에티오피아의 전성기, 악숨 왕국

나무 위키

셈 족의 일부가 기원전 550년 경에 현재의 에티오피아 일대에 도착해서 국가의 기반을 닦기 시작했으며 기원전 2세기에 건국되었고, 기원후 1세기가 되어서는 제국으로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국가 자체는 기원후 10세기 경까지 존속했는데 악숨 왕국은 로마 제국과 이집트, 인도 등의 주변국들을 상대로 상아, 금, 거북 등껍질, 향신료, 노예, 흑요석 등을 팔면서 짭짤한 이익을 취했고 이 무역으로 발생한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강성한 해군력으로 중무장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군사력을 중무장한 이후인 3세기 경부터는 정복 사업으로 영토를 확장하기까지 했다. 또한 4세기에는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5세기경엔 당시 예멘을 지배하고 있던 힘야르 왕국을 공격, 마리브 댐의 붕괴로 한참 국가 막장 테크를 타던 힘야르 왕국을 멸망시키고 아라비아 전부를 지배하려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로마의 홍해지역 함대의 도움을 받았다. 이 사건은 당시 중동에서 대립하던 로마와 페르시아의 두 제국이 홍해의 패권을 두고 일종의 대리전을 치른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아라비아 중부의 부족들에 의해 악숨 왕국은 쫓겨난다. 아라비아 부족이 악숨군을 물리친 때가 바로 '코끼리의 해', 즉 무함마드가 태어난 해다.

7세기경 이후 이슬람 국가들이 번성하면서 무역로가 끊기는 바람에 악숨 왕국은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7세기 이후에는 그 명맥만 유지하다가 결국 10세기에 이르러서 멸망했다. 상술했듯이, 그들은 기독교를 믿어서 수도원을 굉장히 많이 지었는데, 에티오피아 북부의 타나 호수 안의 섬들에도 수많은 수도원들이 위치하고 있다. 악숨은 전성기에 돌을 깎아서 동굴 교회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랄리벨라 동굴 교회이다. 그리고, 지금의 도시 악숨에 있는 교회 지하에 성궤가 위치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악숨에 도착하자 저녁이라 챠크라(에티오피아식 소고기 구이)를 먹었지만 엄청나게 질겨 아주 씹는 연습을 지대로 했다.

고대 유적 투어

악숨은 현재는 에티오피아 하나의 도시이지만 전성기 시대에는 번창했던 고대 국가로 그만큼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우리는 시바 여왕의 목욕탕 → 고고학 박물관 → 오벨리스크 → 시온교회 → 둔구르 유적(시바 여왕의 궁전 터) 를 순서대로 보기로 했다. 사실 크게 멀지도 않아 다 걸어다닐만 한 곳이다.

입장권은 시온교회를 제외하고 6군데 통합 입장권이 300비르로 시내에서 시온 교회를 가는 길에 통합권을 구매할 수 있다. 결국 메인인 시온교회가 빠지는거라 ㅋㅋ 6군데 다 갈건 아니라 그냥 따로 구매하기로 했다.

먼저 시바 여왕의 목욕탕을 향했다. 악숨에서는 12시가 되면 사람들이 교회 앞에 서서 예배를 보았는데 지독하게 가난한 그들의 삶을 보면서 종교가 도대체 무엇인가? 의심을 많이 품었었다.

 
 
12시가 되면 사람들은 예배를 보았다 ​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

고대 악숨왕국의 시바 여왕에 대해 말할 때 솔로몬을 빼 놓을 수 없다. 시바 여왕의 상대역이자 수없이 많은 전설과 수수께끼에 싸여 있는 솔로몬(Solomon)에 대해서 살펴본다. 솔로몬은 유대 민족으로서는 처음으로 통일 왕국을 세운 이스라엘 제2대 왕 다윗(David)의 막내아들로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부왕의 죽음 후에 권력투쟁을 거쳐서 왕위를 계승한 솔로몬(재위 B.C. 961~B.C. 922)은 피폐한 국가의 재통일을 이룩하고 절대적인 권력을 배경으로 주변 국가들을 지배했으며 부왕의 사업을 이어받아 이를 완성시킨 인물이다. (출처 : 낙원, 2000. 9. 7., 마노 다카야, 임희선)

시바 여왕은 솔로몬 왕에 소문을 들었고 그를 찾아가 그의 지혜를 시험했다고 한다. 그녀가 솔로몬 왕에게 어떠한 질문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는 바가 없다. 그러나 그녀는 이 회견에 크게 감격하고 만족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 왕에게 4백 킬로그램이 넘는 황금과 보석, 몰약, 훈향(薰香), 향유, 육계(肉桂) 등을 바쳤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솔로몬 왕도 그에 합당한 물건을 답례로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아끼지 않고 주었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은 솔로몬 왕은 시바의 여왕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나의 빈객이 되신 이상 내 허가 없이는 그 어떠한 음식도 입에 대서는 안됩니다."

그녀는 이 말에 따르기는 했지만 향신료 때문에 밤중에 목이 말라 견딜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물을 한잔 마셨는데, 그 일로 '약속을 어겼다'고 솔로몬 왕에게 다그침을 받았다. 그리고 그 보상으로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솔로몬 왕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시바의 여왕에게 푹 빠져 있었던 것만은 사실인 모양이다. 솔로몬 왕은 그녀를 깊이 사랑하여 그가 죽고 나서는 시바 왕국에 묻히기를 원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시바 여왕의 목욕탕에서 목욕을 즐기는 아이들, 원본은 나에게 있지만 확실히 아프리카 성님들이 실하다 ㅋㅋ

전도사를 한다는 형님 ㅋㅋ 컨셉 사진에 잘 응해주신다

시바 여왕 목욕탕 구경을 마치고 시온 성모 마리아 교회를 향했다. 예배 시간이라 안으로 입장은 불가하다고 하여 그냥 밖만 구경하기로 했다.

 
 
신실한 사람들

살아있는 예수님 같은 에티오피아 아저씨 ​

 

 
지독한 가난 앞에 종교는 무엇인가?

시온 교회 구경을 마치고 오벨리스크를 향했다. 악숨의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보다 큰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처럼 오벨리스크는 고대의 강력한 왕권의 상징이다. 사람이 동원되어 거대한 구조물을 만드는 것은 강력한 힘이 없다면 일할 사람이 없다. 오벨리스크 아래에는 왕들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오벨리스크 앞에는 인류학 박물관이 있는데 사진 촬영이 금지라 간단히 구경만 마치고 나왔다.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에 대한 사진 자료와 고대 의상, 무기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무너진 오벨리스크, 고대 유적들은 1980년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시바 여왕의 궁전이라지만 허름하고 허술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이 없어 상상이 많이 더해진 시바 여왕의 스토리라 실상은 아래 보이는 빈약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커몬요~

 
 
시바여왕의 궁전, 참 허름하다​

 

시바여왕의 궁전 바로 앞에는 Gudit Stelae Field라는 유적지가 있었는데 ㅋㅋ 유적 보호는 없이 농지였다 ㅋㅋ

유적이고 나발이고 ㅋㅋ 농삿일 바쁘다고!!

빠큐 날리는 줄 알았는데 아주 힙한 아기다 ㅋㅋ
728x90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