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Egypt), 카이로(Cairo)] 투탕카멘의 영혼이 살아 숨쉬는 세계 최대의 박물관, 이집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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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아프리가 종단여행

[이집트(Egypt), 카이로(Cairo)] 투탕카멘의 영혼이 살아 숨쉬는 세계 최대의 박물관, 이집트 박물관

by 빵호빵호 2022.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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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구 출신이다.

초등학교 때 국립 대구 박물관에 기획 전시로 투탕카멘과 관련된 고대 이집트 유물을 전시한 적이 있었는데 엄마가 데려갔던 것 같다. 그래서 집에 책도 있는데 그 기억이 굉장히 강렬했는지 10살 갓넘어들은 투탕카멘의 이름이 30살도 넘어서까지 기억이 난다.

오늘은 그 대구에서 봤던 투탕카멘의 유물을 20년만에 만나러 가는 날 ㅋㅋ

​​

이집트 박물관(Egypt Museum)

네이버 백과

카이로의 중심부에 있으며, 고대 이집트의 미술과 고고학적 유물의 수집으로는 양과 질적인 면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19세기 초부터 이집트의 고(古)미술품이 함부로 해외에 반출되자 이를 우려한 프랑스 고고학자 A.마리에트(1821∼1881)에 의해 1858년 카이로 교외의 불라크에 창설된 후 1902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이집트 유적지는 대부분 50% 학생할인을 해준다. 그래서 가짜 국제 학생증을 만들어서 재미를 좀 보았는데 이집트 박물관은 30살이 넘은 사람들은 안된다. 매표소에서는 표를 사는데 성공했지만 입구에서 다시 나이 확인을 해서 결국 다시 표를 사야했다 ㅋㅋ

입장료는 일반 160파운드, 학생 80파운드

세계 최대의 박물관

람세스 상

들어가자마자 유물들이 그냥 흘러 넘친다. 10만점이 넘는다고 하니 박물관에 발에 치이는 것이 유물이다.

박물관의 유물 대부분은 고대 이집트 시대의 유물로 여기서 파라오를 짚고 넘어가지않을 수 없다.

파라오(Pharaoh)

고대는 제정일치의 사회였다. 정치를 하는 사람과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최고의 권력자였다. 아직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기,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었기에 제사장의 힘은 막강했다.

파라오는 고대 이집트의 정치적·종교적 최고 통치자로서 '두 땅의 주인(Lord of the Two Lands)'이라는 칭호와 '모든 사원의 수장(High Priest of Every Temple)'이라는 칭호를 겸하고 있었다. 이 때 '두 땅의 주인'이란 파라오가 상이집트와 하이집트 전체의 통치자라는 의미로, 파라오는 두 지역의 모든 토지에 대한 소유권, 법률집행권, 조세의 권리와 함께 두 지역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할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한편 '모든 신전의 수장'은 파라오가 지상에서 신을 대신한다는 의미로, 파라오는 제사의식을 주관하고 신전을 건설했다.

막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왕의 무덤인 거대한 피라미드, 신전 등을 만들었고 수 많은 유물들이 후대에 전수될 수 있었다.

 
 
박물관 중앙을 장식하는 거대한 람세스 조각상 ​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 ​
 
 
 
 

 

기원전 3000년부터의 유물이 있다보니 훼손된 것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유물들이 남아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1층의 큰 조각상들 ​

 

 
 
동물과 관련된 조각상들도 많다

박물관은 1층과 2층으로 되어있다.

어떻게 구분을 지어놓은건지 사실 모르겠는데 1층에는 거대한 조각상들이 많았고 2층에는 미라, 벽화, 관, 모형들이 있었다.

2층에는 특히 미라의 방이 있는데 추가로 입장료를 내야한다.(일반 160파운드, 학생 80파운드, 사진촬영은 금지였다)

이집트의 미라

시신을 담은 관

투탕카멘(Tutankhamun)

고대 이집트 제 18왕조 말기의 왕(재위 B.C. 1361년~1352년). 아크나톤의 사위이며 왕위 계승자. 처음 의부와 함께 아톤 신을 신봉하고 이름도 투탄카톤(Tutankhaton)이라고 했으나, 전왕의 죽은 아몬신 숭배에 의한 반동이 있었고, 왕도 여기에 굴복하여 투탄카멘으로 개명했다. 수도도 아케토아톤(아마르나)에서 테베로 천도하였으나 20세미만 요절했다. 치세(治世)도 짧고 기념물상의 이름도 호르엠헤브 등이 깎아 냈으므로 역사적으로 명확한 존재가 못되었으나, 1922년 왕가의 계곡에서 카터가 그의 묘(제62호)를 발굴하여, 미라와 부장품을 발견하고 나서는, 귀금속 세공의 호화로움과, 발견에 따른는 에피소드 등으로 떠들썩해져, 고대 이집트 국왕 중에 가장 유명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2층에는 드디어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가 나타났다. 미소년이었다는 설대로 매우 잘생겼다. 사실 투탕카멘의 유명함에 비해 업적도 없고 알려진 사실도 별로 없다. 다만 1922년 이집트에서 고대의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한 팀이 하나둘씩 연이어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는 도시전설. '파라오의 저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투탕카멘의 마스크

워낙 유물이 많고 역사가 깊어 제대로 둘러 보려면 하루로도 부족하다.

방문 전 이집트의 고왕조, 중왕조, 그리고 페르시아인에게 지배 당하기 전까지의 신왕조 혹은 후기왕조에 대해서나 파라오, 한국으로 치면 광개토 대왕격인 람세스 2세 등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간다면 더 없이 좋은 현장 공부가 되지 않을까 한다

아기자기한 유물들

 
 
미술 실력이 정말 좋다 ​

 

파리루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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