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T, Pacific Crest Trail] 61화. 퀸시(Quincy)의 윌리엄과 케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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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국 PCT(Pacific Crest Trail)/North California

[PCT, Pacific Crest Trail] 61화. 퀸시(Quincy)의 윌리엄과 케이트

by 빵호빵호 2023.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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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T에서 매일 다른 길을 걷지만 사실 큰 맥락은 '산을 걷는 일' 이었다.

4월 28일에 시작했으니 이제 3개월을 꽉 채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산을 3개월이나 걷는다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면서 걷겠는가 ㅋㅋ 그래서 PCT는 걷는 것보다는 사실 생각하는 것에 가까웠다.

 
 
무수히 많은 산을 넘으며 무수히 많은 PCT 표지판을 만난다

걷다보면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생활, 일하던 시절 모든 시절들을 생각했고 옛 여자친구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삶을 통째로 뒤돌아보고 생각해보는게 살면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한국에서 일상을 살면서는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갖는게 참 어렵기 때문에 이건 PCT의 큰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CT를 마친 사람들이 책을 내곤하는데 자신을 뒤돌아 본다. 나를 찾아간다. 이런 제목들이 꽤 있는데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어김없이 하루가 지나고

 

또 보금자리를 접어 떠날 채비를 한다

이제는 하루에 하이커를 한번 보는 것이 참 힘들었다.

맨 처음 시작했을 때는 투닥투닥 앞서가며 뒤쳐지며 일자별로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3개월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4,300km의 긴 거리안에 각자의 속력으로 뿔뿔이 흩어져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간혹가다 하이커를 마주치면 강력한 동료애와 훈훈함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만나는 하이커의 뒷모습

2,000km 지점을 지났다. 그렇게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려왔지만 아직도 반도 오지 못했다.

사실은 아주 많이 지겨워진 PCT이지만 내 생에 다시 없을 기회라는 걸 잘 알기에 마음의 동요가 이는 것을 억누르고 걸어야했다.

2,200km 남았다...

2,000k 지점을 지나 커다란 강을 만나 간식을 먹는 중이었다.

노스 캘리포니아에는 말벌들이 참 많았는데 앉아서 쉴 때마다 얼마나 괴롭히는지 조금 짜증이나 팔을 휘젓다 말벌이 맞고는 작은 돌에 앉아 있을 때였다. 그런데 순식간에 좀 더 큰 벌이 오더니만 말벌을 휙 낚아채가는 것이었다.

통쾌한 마음도 들었지만 한편으로 조금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설계된대로 살고 있을 뿐인데...

다음 날 우리는 퀸시에 들어갈 수 있었다.

퀸시를 갈 수 있는 도로에는 지도상 우측은 Quincy, 좌측은 Bucks Lake 두 마을로 갈 수 있는데 벅스 레이크는 작은 커뮤니티 수준이고 퀸시가 훨씬 큰 마을이라서 퀸시로 택했다.

다만 산중에 작은 도로라 차랴이 많지 않았지만 운이 좋게도 금방 히치하이킹을 할 수 있었다.

퀸시 마을까지 태워준 히피 아저씨

Guthook 앱에는 마을마다 어떤 트레일 엔젤이 있는지 어디가 싸고 유용한지 등에 대한 정보가 꽤 있는 편인데 퀸시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마을 도서관에 들러 사서에게 근처에 캠핑 가능한 곳이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뭐 뚱딴지 같은 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하는 수 없이 뒤돌아서 나오는데

"괜찮으면 우리 집으로 갈래요?"

뒤돌아 보니 할머니 한분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할머니의 이름은 케이트, 남편인 윌리엄은 컨트랙터(배관, 목수, 타일 모든 기술이 있어 혼자서 집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며 집이 동네에 몇 채 있다고 한다 ㅋㅋ ​ 그렇게 할머니의 집으로 가기로 하고 가기 전 사우스 레이크 타호에서 H-Mart로 주문해 놓은 한국 음식을 챙겨서 갔다.

퀸시의 윌리엄과 케이트

트레일 엔젤의 집에 가면 으레 우리는 한국 음식을 해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제육볶음을 자주 했었는데 미국인들에게 쌈 싸먹는 걸 가르쳐 주면 한 입에 안먹고 꼭 베어서 두번에 걸쳐 먹었는데 그러고 나면 손과 입이 고추장 범벅이 되었다 ㅋㅋ 귀여웠다 ㅋㅋ

북한에 대한 이야기, PCT에 대한 이야기, 케이트 할머니와 윌리엄 할아버지는 서로 세번째 결혼이라는 놀라운 이야기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매일 흙바닥을 느끼며 자다가 오랜만에 매트리스에서 잠을 자니 그렇게 자주 깨던 일도 하나 없이 늦게까지 푹 잘 수 있었다.

케이트 할매 집에서 해먹은 음식들
 

 

<PCT 횡단기를 다룬 책, 워킹(Walking)>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249267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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