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T, Pacific Crest Trail] 62화. 하프 웨이(Half Way)
본문 바로가기
2018년 미국 PCT(Pacific Crest Trail)/North California

[PCT, Pacific Crest Trail] 62화. 하프 웨이(Half Way)

by 빵호빵호 2023. 4. 10.
728x90
728x90

노스 캘리포니아는 숲 속을 걷는 일이 잦다.

PCT를 오기 전 영화에서 보던 북미의 울창한 숲을 기대했었는데 그 상상만하던 숲을 걷는 것은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은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어주었다.

앞서가는 은진이​

 

숲 속을 자주 걷지만 숲에 난 오르막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또 정상에 올라 아름답게 펼쳐진 전경을 볼 수도 있었다.

 

최근 며칠동안 계속 하늘이 흐렸다. 연기가 가득하고 숨쉬기도 힘들어서 큰 불이 났나 생각이 들었는데 미국에서 유심을 사지 않은터라 소식을 알 수 없었는데 다행히 오랜만에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탁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의 맑은 하늘​

 

​ 정상에서 이제 내리막을 내려가면 벨던(Beldon)이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는데 햄버거를 하나 사먹을 참이었다.

구불구불 길이 난 스위치 백은 가파른 오르막에서는 매우 유용하지만 내려갈 때는 가로 질러 가고픈 욕구가 생긴다. 그래서 길을 가로질러 가다가 그만 엉뚱한 곳으로 빠져 결국 20분을 헤매이다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 ㅋㅋ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개열받는다.

긴 내리막을 내려오면 벨던으로 가는 기찻길이 나온다

벨던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햄버거를 하나 사먹고 쉬고 있는데 주인집 아저씨가 나오시더니 하나에 10달러나 하는 즉석 요리 식량을 2개나 줘서 마음이 든든해졌다. 항상 30센트 하는 라면 3개로 저녁을 먹는데 ㅋㅋ 엄청난 횡재였다.

벨던을 지난 PCT 초입의 산딸기, 따먹고 간다

벨던에서 맥주까지 한잔 마신터라 오후의 나른함을 이겨내기 힘들었지만 또 걸어야만 하는 것이 하이커의 숙명이었다. 떨어지는 햇살에 이상하게 기분도 조금 처지는 것 같았다. 이제는 해가 지는 시간이 빨라진 탓이 아닌가 싶었다. 또 하루가 간다.

매일같이 불 피우느라 귀찮지만 저녁 시간의 가장 좋은 친구다

드디어 오늘은 미드 포인트를 지나는 날이다.

PCT의 길이가 4,286km니까 2,143km를 걸어온 셈이된다. 진짜 열심히 걸어온 것 같은데 아직도 반이나 남았다니...

직역하자면 시발! 여기까지 걸어왔어 정도가 되겠다 ㅋㅋ

2,000km를 넘게 함께 해준 든든한 내 배낭

언제쯤 하프웨이 포인트를 지나나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걷는데 우리를 앞서가던 장발의 잘생긴 친구가 멀리서 소리를 쳤다.

"We did it!"

그가 서있는 곳까지 열심히 달려가니 아주 자그마한 기둥하나만이 서있었다.

둘이서 사진을 잘 찍지 않는데 기념비적인 곳이라 사진도 실컷찍고 로그북에도 글을 잘 쓰지 않는데

"성호, 은진 하프 웨이를 지나다."

라고 짧게 글도 남겼다. ㅋㅋ

2,143km를 걸어왔다 ㅋㅋ

 
 
2,000km의 먼길을 함께해준 은진이

하프웨이를 지나는 소감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ㅋㅋ

시작하고 한 500km 정도까지는 100km 지날 때마다 기분이 좋고 뿌듯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기념비적인 곳을 지날 때에도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진 좀 찍고 금세 길을 다시 나섰다.

하프웨이와 멀지 않은 곳에 체스터(Chester)라는 마을이 있어 맥주도 사고 고기도 사서 기념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나름 엄청난 일이 생겼다. 히치 하이킹이 거의 1시간 가까이 되지 않았는데 겨우 차를 잡아서 타고 내렸는데 은진이가 신발을 두고 내렸다는 것이었다... 두둥. 문제는 마을이 작아 신발살 곳도 없었다.

일단 시장을 보고 하이커들이 모이는 교회로 가보니 다행히 하이커 박스가 있었고 다 낡아빠졌지만 신발이 있어서 구해 신었다.

그리고 다시 트레일로 복귀하려고 히치를 하는데 또 30분 이상 되지 않아 힘이 빠져있는데 빨리 달리던 차가 급하게 섰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체스터 들어오는 길에 우리를 태워 주었다. 프랭크(Frank)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집에 갔다가 차에서 짐을 내리는데 은진이의 신발이 있는 것을 보고 급하게 바로 차를 돌려 왔다고 했다.

가슴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울컥했다. 나라면 쓰레기 같은 신발 그냥 버렸을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특별한 일 없는 PCT이지만 사람으로 인해 특별한 일들이 생긴다.

우리의 천사 프랭크 아저씨

하프웨이 지남을 기념하며
728x90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