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T, Pacific Crest Trail] 64화. 미국의 거대 산불 그리고 긴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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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국 PCT(Pacific Crest Trail)/North California

[PCT, Pacific Crest Trail] 64화. 미국의 거대 산불 그리고 긴 이별

by 빵호빵호 2023.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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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가득한 날들이 계속 되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건 직감했지만 대형 산불이 났다는 건 버니(Burney) 마을에 들어가서야 알게되었다. 버니에는 하이커들이 머무를 수 있는 교회가 있는데 굉장히 강당에서 하이커들이 지낼 수 있었다.

교회 강당에 들어가니 노스 캘리포니아를 시작하는 지점인 사우스레이크타호에서 만났던 마크 할아버지가 있었다.

"지금 산불때문에 점프를 하고 오레곤부터 시작하는 하이커들이 많아."

"할아버지는 어떻게 할거에요?"

"난 일단 그냥 걸어보려고."

결정을 내리지 못했지만 계속 숨쉬기 힘이들어 수건을 물에 적셔 입을 막고 걸었었다. 그렇다고 500km 가까이 되는 거리를 스킵하려니 무언가 마음에 걸려 쉬면서 하루만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결국 스킵은 할 수 없어 일단 걷고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면 그 때 스킵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다시 트레일에 올라섰다.

 
 
버니의 명물 버니 폭포

예상대로 하늘은 연기로 가득해 숨쉬기가 힘이 들었 수건으로 입을 막고 걸어야했다. 캘리포니아의 레딩이라는 곳에서 난 산불인데 미국 역사상 6번째로 큰 불이라 수 많은 사람들이 대피를 했다고 했다.

연기로 노을이 질때면 악마가 나타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오싹했다​

버니에서 은진이는 드디어 유심을 구입했다. 미국 생활 3개월만의 일이었다 ㅋㅋ 우리도 참 어지간하긴했다.

밤에 매트 위에 누워 휴대폰을 보던 은진이는 얘기했다.

"오빠 얘들 벌써 워싱턴에 들어갔네?"

얘들이라고 했지만 그들이 하이커 타운에서 만났던 한국인 대학생들 3명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워싱턴이면 이제 850km 정도만 더 걸으면 됐다. 반면에 우리는 아직 2,000km가 넘게 남아 있었다.

두 달 사이에 우리의 거리는 이렇게 벌어져 있었다. 갑자기 무기력감이 온몸을 감쌌다.

"오빠는 하루에 얼마나 걸을 수 있어?"

"난 40km는 더 걸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우리는 하루에 40km를 넘게 걸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걸으려면 밤까지 걸어야 하는데 은진이는 밤에 걷는 걸 무서워했다. 같이 걸어주고 있는 은진이가 고맙기는 했지만 애들이 벌써 워싱턴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니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다.

"왜?"

"아니야."

괜히 40km를 걷는다고 말했나 하는 후회감이 밀려왔다.

마음에 압박감을 준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좀 압박해서 더 걷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은진이와 밤에 휴대폰을 했던 텐트 사이트​

 

오랜만에 맑은 하늘 덕분에 샤스타 산을 볼 수 있었다

다음 날 오랜만에 날이 맑았다. 2주가 넘게 샤스타 산을 볼 수 없었다는데 정말 운이 좋은 모양이었다.

미국에는 탄산음료 브랜드 중에 샤스타가 있어 샤스타 콜라, 샤스타 환타 이런 것들이 있었다.

샤스타 마을에는 아웃도어점 주인이 트레일 엔젤을 하고 있었는데 올해 하이커들이 무자기로 들이닥치면서 사용하고는 난장판을 만들어서 트레일 엔젠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런 사정을 모르고 방문했는데 두 사람밖에 없으니 마음껏 쓰라며 뒷편에 있는 주차장을 개방해 주었다. 고마워 수박과 맥주를 사서 주니 환하게 웃어주었다.

"오빠, 나 포틀랜드에서 좀 쉬고 싶은데 혼자 걸을래?"

'아... 어제 그래서 물어봤구나.'

"진아, 완주 못해도 괜찮으니까 천천히 걸어도 되니까 그냥 같이 걷자. 응?"

"아니야. 나는 진짜 걷는 거 싫어하는 거 알지? 미국에 왔으니까 미국 생활도 해보고 싶고..."

그러고 보니 나야 걷는 거 좋아하지만 은진이는 이렇게 미친듯이 걷는게 싫을것 같기도 했고, 미국 생활이 해보고 싶을 것도 같았다. 3주나 떨어져 지내야 하니 좀 걱정이 되었지만 은진이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지금의 속도로 걸으면 완주는 꿈도 꿀 수 없는게 현재 상황이었다.

이제는 완주에 대한 희망이 조금 보이기 시작하기도 했다. 그렇게 다다음 날 은진이는 기차를 타고 포틀랜드로 갔고 나는 하루만 쉬고 트레일로 복귀했다.

긴 이별이 시작되었다. ​

샤스타 마을의 아웃도어 점 뒤의 주차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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