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T, Pacific Crest Trail] 66화. 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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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국 PCT(Pacific Crest Trail)/North California

[PCT, Pacific Crest Trail] 66화. 적응

by 빵호빵호 2023.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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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예전 정말 좋아하던 여자애랑 헤어지고 앞으로 나는 남은 삶을 정상적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찼던 때가 있었는데 모두 다 잊어내고 이제는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은진이가 포틀랜드로 떠난 이후 매일같이 붙어 다니던 은진이가 없는 혼자만의 하이킹에도 금새 적응이 되어버렸다.

 
 
신발이 남아나질 않는다 하이커들은 4,300km를 걷는 동안 보통 3~4켤레의 신발을 바꾼다고 한다

 

하루에 50km에 가까운 거리를 걷다보니 먹는량이 엄청나게 늘었다. 분명 은진이와 헤어진 샤스타 마을에서 일주일치의 음식을 사왔는데 5일만에 거의 다 먹고 음식이 바닥을 드러냈다. 에트나(Etna) 마을에는 들릴 생각이 없었는데 하는 수 없이 들리기로 했다.

'뭐지? 저 조합은?'

앞에는 서양인 남자와 그 바로 뒤에 자그마한 동양인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누나!"

"야! 오랜만이다. 은진이 인스타보고는 트레일 오프한 줄 알았는데?"

"아~ 은진이 혼자 좀 쉬러가고 저 혼자 걷고 있어요."

"그랬구나. 여기는 내 남자 친구야!"

누나는 작년에 PCT를 하며 미국인 남자친구를 만났다고 했다. 그는 올해 PCT만 완주하면 트리플 크라우너(PCT, CDT, AT 미국의 3대 장거리 트레일을 모두 완주한 사람을 칭하는 명칭)이라고 했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누나가 불렀다.

"남자친구가 줄게 있데."

"네?"

그는 가방에서 신라면 한봉지와 작은 고기 다진 고추장을 꺼내주었다. 미국인의 가방에서 한국 음식이 나오는 것도 그걸 한국인이 나한데 주는 것도 웃긴 생각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 누나 아래 산불 났는데 조심히 다니세요."

"응! 너도 무사히 완주하렴!"

누나는 오레곤과 워싱턴의 경계가 되는 지점에서 열리는 PCT Day(아웃도어 업체, PCT 하이커들, 관계자들이 모여서 여는 행사)에 참여하고 북에서 남으로 걸어오는데 노스 캘리포니아만 마치면 끝이라고 했다.

 
 
누나를 만났던 곳, 아주 오랜만의 시에라의 느낌이 나는 구간이었다

에트나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에는 차량이 적었다. 몇십분에 한대가 지나는 정도라 Guthook App에도 사람들이 히치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 난 20분만에 성공해서 마을로 들어갈 수 있었다.

히치 하이킹 성공!

미국에 대형 마트는 월마트(Wal mart), 세이프웨이(Safe Way), 본스(Vons) 등이 있는데 우리는 본스를 자주갔다. 그리고 다이소같은 달러 제네럴(Dollar General)이 있는데 큰 과자 봉지들도 보통 1~3달러 수준이라 저렴했다. 에트나 마을에는 달러 제네럴이 있어서 55L 배낭 가득 과자와 음식을 사서 도서관 앞으로 왔다. 도서관 앞에도 마트가 하나 있는데 즉석 치킨이 있어 한 마리 사고 맥주를 사서 나왔다.

도서관 앞에는 와이파이가 잡혀 처음으로 엄마와 영상 통화를 했다.

엄마는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쏟아냈다. 30넘은 아들래미가 타국에 고생하러 가서 아저씨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픈 모양이었다. 나도 엄마를 보는데 엄마도 많이 늙어있어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이를 악 깨물고 울음을 참고서 통화를 마쳤다.

은진이는 다행히 포틀랜드에서 한국인 아주머니 집에서 3주 머무르기로 했고 포틀랜드 생활이 재미있다고 했다.

포틀랜드 시내 구경 간다며 ㅋㅋ

PCT 처음 시작할 때(왼쪽)와 중반(오른쪽)이 넘어가면서

다행히 트레일로 돌아갈 때도 히치가 빨리 됐다. 야간 사슴 사냥에 나서는 사냥꾼의 차를 얻어 탔다. 가을철이 되면 사슴 사냥이 법적으로 허용된다는데 사슴 고기가 그렇게 맛있다고 한다 ㅋㅋ

히치해주었던 사냥꾼들

새로운 구간에 접어들었다

트레일로 복귀하고 얼마지 않아 산불 구간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산불이 한번나면 어마무시했다. 수십키로를 태워먹어 다 타버려 죽은 검은 나무들이 분위기를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산불 구간을 벗어나서 자고 싶었지만 워낙 길다보니 귀신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곳에서 잠을 청했다.

밤새 사슴들이 얼마나 텐트 주변을 얼쩡거리며 괴롭히는지 ㅋㅋ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새벽까지 벌떡 벌떡 일어나 마운틴 라이언은 아닌지 곰은 아닌지 확인하고서야 잠이 들었다.​

을씨년한 산불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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