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T, Pacific Crest Trail] 68화. 지지리 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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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국 PCT(Pacific Crest Trail)/Oregon

[PCT, Pacific Crest Trail] 68화. 지지리 궁상

by 빵호빵호 2023.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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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곤으로 넘어갔을 때 이미 해는 지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오레곤으로 주 경계가 바뀌었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무언가 변하는 건 없었다. 그냥 산길이 계속 이어지는 것 뿐

오레곤의 첫번째 마을 애슐랜드(Ashland)는 주 경계를 넘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새벽까지 부지런히 걸어 마을에 들어가는 도로 앞에서 잠을 청하면 60km를 넘게 걷는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매일같이 자연스럽게 노을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금새 사라져 버리고 달이 나타난다

새벽 1시

갑자기 발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신발 옆에 찢어지면서 점점 벌어져 걸을 때마다 흙이 너무 들어와서 발바닥이 아파 세이아드 밸리(Seiad Valley)의 캠핑장에 있는 하이커 박스에서 신발을 주워 바꿔 신었었다. 신발이 내 발사이즈보다 3치수는 더 크다보니 걸을 때마다 발목에 모래 주머니를 찬 것처럼 무거웠는데 결국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한 것 같았다.

'몸이 주는 신호에 귀 기울이자.'

욕심을 줄이고 40km 걸은 지점에서 멈추기로 했다.

길가에 아무데나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한다

 

​다음 날 아침

드디어 낮의 오레곤을 볼 수 있었다. 새벽까지 걸으면서 사실 놓치게 되는 풍경도 많았다. 다만 내가 어떤 풍경을 놓치고 있는지 모를 뿐

난 세상 모든 것이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사람과의 만남뿐만이 아니라 책, 음악, 영화, 자연, 나무, 동물 모든 것이

그 순간, 그 시절 나와 마주친 것은 내가 마음을 준 것은 어찌 인연이 닿지 않고서야 일어날 수 있었을까?

오레곤의 첫 느낌

애슐랜드로 들어가는 도로가 가까워져갈 때 쯤 트레일 매직을 만났다.

이제는 날이 선선해진 탓에 탄산을 만나도 예전과 같이 그렇게 반갑지가 않았다. 그래도 2캔이나 마셨다 ㅋㅋ 예전같으면 아주 반가워서 5~6캔을 마셨을텐데 초반과 참 많이 달라져있었다.

오랜만의 트레일 매직

애슐랜드는 생각보다 훨씬 큰 도시였다. Guthook App에서도 트레일 엔젤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어디를 가야할지 감이 오지 않아 일단 인터넷을 잡아보려고 대형마트에 들렀더니 다행히 와이파이가 있었다.

숙박 앱을 켜서 보니 하루에 기본 20만원... 두둥

혼자서 절대로 그런 곳에서 잘 수는 없다.

은진이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더니 포틀랜드를 신나게 구경중이었다 ㅋㅋ 오늘은 돈 아끼지 말고 방 잡아서 자라고 하는데 도저히 결제에서 완료를 누르지 못하는...

한국을 떠나올 때 어느 정도 경비에 대해서 다 생각을 하고 준비를 해온 것이었지만 항상 돈은 계획보다 많이 나가게 되었고 또 있는 돈에서 버는 것 없이 자꾸 까먹기만 하게 되다보니 늘 마음이 후달렸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일단 마트에 나오는 사람을 붙잡고 마당이 있으면 오늘 하루만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냐고 물어보니 다들 마당이 없다. 안된다. 미안하다였다. 하이커 친화적인 마을이 있는 반면 하이커의 존재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 마을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라도 우리 집 앞마당에 거지같은 놈을 재워주진 않을 것이다 ㅋㅋ

포기하고 장만봐서 트레일로 복귀를 하려던 찰나

"아까부터 봤는데 내가 컨트랙터거든. 짓고 있는 집이 있는데 오늘 하루 거기서 자렴."

하며 아저씨 한분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컨트랙터는 집을 짓는데 배관공, 목수, 타일러 등의 다양한 직업이 있다면 그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저씨가 빌려준 집은 엄청 근사했다. 아저씨는 문만 열어주고서 바로 떠났다.

거의 마무리 단계라 여느 집과 다를 것이 없었다. 바로 배낭을 내리고 장을 보고 아저씨가 먹을 음식들까지 사서 냉장고에 채우고서는 샤워도 하며 맥주도 마시고 ㅋㅋ 호사를 누렸다.

살다보면 좋은 사람들로 인해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일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야 할텐데

구원의 아저씨가 하루 빌려준 집

혐짤이넹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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