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T, Pacific Crest Trail] 71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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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국 PCT(Pacific Crest Trail)/Oregon

[PCT, Pacific Crest Trail] 71화. 위로

by 빵호빵호 2023.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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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태생이 외로운 존재가 아닐까?

그건 타인이 나의 외로움을 몰라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타인을 몰라줌을 포함해서 말한다.

나부터 남을 잘 몰라주는데 어찌 남이 나를 잘 알아주겠으랴. 외롭지 않고 싶다면 타인부터 챙겨주라.

그럼에도 나의 외로운 감정이 먼저였다.

자잘한 인연들 속에서 채워지지 않는 감정의 독이 점점 깊어져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사진상에 잘 보이지 않지만 살아있는 말벌과 살아있는 개미들의 격렬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다 강할 것만 같던 말벌이 개미들에게 결국 먹혀 버렸다 해석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자연이다

오레곤은 마을이 잘 없었다. 하지만 중간 중간에 리조트들이 있어 재보급을 할 수 있었고, 하루에 30km를 걷던 다른 지역과는 달리 60km 가까이 걷다보니 300km의 거리도 5일이면 갈 수 있으니 재보급에 대한 마음의 부담도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국립공원과 비슷하게 자연을 국유림(National Forest) > 황야지(WildernesS) 로 구분지었다​

 

오늘을 지나고 내일이면 셸터 코브 리조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햄버거가 아주 기가막힌다고 했다.

조금 열심히 걸어 앞서가는 하이커들을 따라 잡았더니 한명은 중국계 미국인, 한명은 그냥 미국인이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미국인인 여자애가

 

"맥주 한병 주세요."

"한국에서 왔어요."

한국말을 하는 것이었다. 발음이 너무 귀여워서 계속 시켜먹었다 ㅋㅋ

그녀는 한국 일산에서 2년동안 영어 선생님을 했다고 한다. 우리집이 파주라 일산이랑 가깝다고 하니 문산가서 제육볶음에 맥주를 자주 마셨다고 해 한번 더 아빠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저 멀리 아주 오랜만에 보는 하이커들이었다

흐린날의 일몰도 아름답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니 힘이 나 밤 늦게 까지 걸을 수 있었다.

길가 아무 곳이나 보금자리가 된다

다음 날

또 미친듯이 걷기만 했다. 오레곤에서는 흐르는 물보다는 호수의 물을 자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정수를 해서 마셔야했다. 정수를 하더라도 물이 있으면 다행인데 오늘은 그 호수 물마저도 없어 긴 구간동안 물이 없이 걸었다.

Guthook App에 보니 워터 캐쉬가 있다는 말에 열심히 내달렸다. 그리고 이따금씩 트레일 매직이 있다는 말이 있어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덩그러니 물통들만... 물도 있고 배가 고픈김에 라면을 한바탕 먹고 있자니 차가 한대 들어섰다.

'혹시??'

트레일 엔젤은 아니었는데 그냥 등산을 온 하이커들이었다.

"헤이! 먹을 거 좀 줄까?"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물론이죠~"

그러더니 차 뒤에서 음식을 마구 꺼내기 시작하더니 한바가지가 되었다. 무슨 음식을 이렇게 많이 들고 다니냐고 하니 원래 차에 음식을 많이 들고 다닌다고 했다.

재보급이 필요없어졌다

마구마구 음식을 주었던 고마운 형님들과 누님

또 하루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그렇게 또 새벽까지 걸으니 어느새 호수에 도착해 있었다.

대충 아무곳에나 자리를 잡고 텐트를 치고 잠을 청했다. 매일 매일 치고 접는 텐트 생활을 몇달째 이어가고 있지만 참 귀찮았다.

다음 날 아침 안개에 낀 호수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순간을 놓칠까 싶어 사진기를 열심히 들이밀고 나니 금새 안개가 사라졌다.

드디어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날이라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풍경이고 나발이고 ㅋㅋ

평지길이 많은 오레곤

셸터 코브 리조트에 도착하니 캠핑을 온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리고 한켠에는 하이커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있었다. 하이커 박스에서 먹을 만한 음식들을 꺼내고 있으니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의 이름은 네이비

"요즘은 그냥 의미없이 걷는 것 같아."

"맞아요. 걍 숙제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누구나가 다 그럴거야. 처음의 설레임도 지났고, 풍경이 너무 아름다운 시에라도 지났고, 흙바닥 위에 자는 것도 질리고, 누구나가 다 그럴거야."

그의 말 한마디가 참 많은 위로가 되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구나, 누구나다 다 그렇구나, 이렇게 다들 참으며 하는 구나. 나와 비슷한 입장에 선 사람에게서 내가 느끼는 아픔을 들으니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잠시 대화를 나눈 후 드디어 햄버거를 주문하러 갔다. 리조트에 있는 TV 앞에서 사람들은 풋볼을 보고 있던데 괴성을 지르며 난리도 아니었다 ㅋㅋ 햄버거를 먹고 있자니 이틀 전에 만났던 R. Kelly도 도착해 또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었다.

R. Kelly와 함께

실컷놀고 보금자리로 돌아가니 네이비와 그의 여자친구 파이어볼은 캠프 파이어를 만들고 불멍을 하고 있었다. 그들 옆에서 맥주를 같이 마시고 잠자리에 들어갈 시간이 되자 불을 꺼야 한다며 파이어볼은 우리보고 뒤돌아라고 하더니 불 위에 앉아서 오줌을 쌌다 ㅋㅋ 아메리카 프리덤이다 정말

사람은 사람으로 산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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