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T, Pacific Crest Trail] 73화. 오사무 아저씨
본문 바로가기
2018년 미국 PCT(Pacific Crest Trail)/Oregon

[PCT, Pacific Crest Trail] 73화. 오사무 아저씨

by 빵호빵호 2023. 4. 20.
728x90
728x90

빅 유스 레이크를 떠난지 얼마지 않아 2,000 mile 지점을 지났다. 대략 3,200km를 걸어온 셈이었다. 걸어서 3,200km라니 ㅋㅋ 차를 타고 다니는 삶에 다시 익숙해져있어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전혀 믿기지가 않는다.

얼마지 않아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섰다.

'제퍼슨 황야(Jefferson Wilderness)'

시작과 동시에 긴 산불 구간이 이어졌다.

또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선다

이제 산에도 가을 냄새가 물씬 짙어지기 시작했다.

점점 북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점점 가을 속을 향해 걸어가는 꼴이었다.

이제는 산에 가을 냄새가 많이 나기 시작한다

오레곤에도 꽤나 멋진 풍경들은 많다

종교는 없지만 불교의 인연이란 개념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PCT에 관해 포스팅을 할 때도, '워킹' 책에서도 인연이라는 말을 참 많이 쓴 것 같다.

'왜 하필 그 때 그 곳에서 그 사람을'

이란 대답에 막연하지만 인연이라는 말 외에 설명 가능한 것이 없는 것 같다.

고요하고 적막한 긴 산불을 하루 종일 걷고 있었다.

보통 바닥의 발자국을 보며 성큼 성큼 걷가 가끔씩 고개를 드는데 고개를 드는 순간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오레곤의 시작지점인 애슐랜드에서 보았던 오사무 아저씨였다. 당시에는 외국인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걷고 있다고 했었는데 어느새 또 떨어져 혼자 걷고 있는 중이라했다.

"사무사마, 히사시부리~"

"오 히사시부리~"

일본어를 조금 공부해서 어설프지만 아저씨와 일본어로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간단한 안부 정도만 묻다가 아저씨는 오늘은 조금 일찍 잠을 자겠노라며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반가운 뒷모습

오사무 아저씨가 잠을 청했던 풍경이 멋진 자리

아저씨를 뒤로하고 또 밤 늦게까지 아니 새벽까지 걸었다. 배도 고프고 서서히 지칠때가 되었는데 때마침 호수가 나와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텐트를 한참 치고 있는데 묵직한 발걸음이 이어져 오는 것이 아닌가...

'아 개무섭네...'

숨죽여 기다리고 있자니 사슴 사냥꾼들이었다.

"하이."

"하이."

내 옆에 텐트를 치는데 혹시나 인종차별주의자들이라서 나를 활로 쏘거나 총으로 쏘는 건 아닌지, 셋이서 나를 강간이라도 하면 어쩌지 별의 별 생각을 다했다 ㅋㅋ 그와중에 또 자기 전 새벽에 라면을 끓여 먹은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내 몹쓸 상상력이 괴물이지.. ㅋㅋ

늘어지게 자고 일어났다

다음 날 아침 산 중 호수의 풍경은 기가 막혔다.

출발 전 아침을 먹고 출발하려고 라면을 끓이고 있자니 어제 일찍이 잠자리를 펼친 오사무 아저씨가 나타났다.

"오~ 사무사마."

"호!"

아저씨가 텐트를 치고난 후 수 시간을 걸었으니 굉장히 일찍 일어나 출발한 모양이었다.

"아저씨는 여기 오기 전에 뭐했어요?"

"나? 트럭 운전사였어."

"진짜요? PCT는 어떻게 알고 온 거에요?"

"JMT가 워낙 유명하니까 작년에 와서 해보고 올해 꼭 PCT를 해봐야지 했거든."

아저씨는 현재 아내와 이혼 중인 솔로고 애기는 다행히(?) 없다고 했다.

"친구들이 이런 나를 보고 부럽다고 하는데 난 인생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선택은 자유롭다고 생각해."

마지막 아저씨는 멋진 말을 남기고 먼저 떠났다.

728x90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