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T, Pacific Crest Trail] 74화. 오랜만의 트레일 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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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국 PCT(Pacific Crest Trail)/Oregon

[PCT, Pacific Crest Trail] 74화. 오랜만의 트레일 엔젤

by 빵호빵호 2023.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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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화창했다. 꼭 가을 날씨 같았다.

푸른 하늘에 넓게 펼쳐진 구름이 세상에 살아 있음을 고맙게 만들어 주었지만 4개월이 넘게 매일같이 산중을 걷고 있다보니 그 속에서도 불만은 생기고 무기력함도 생겼다.

푸른 하늘이 너무 좋다

오사무 아저씨와의 잠깐의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혼자였다.

North California의 래딩이라는 곳에서 큰 산불이 나 많은 하이커들이 점프를 한 탓에 점프를 하지 않고 계속 걸어온 나는 많이 뒤쳐져 있었고 또 대다수의 하이커들이 점프를 해서 가는 바람에 이제 사람을 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오랜만의 큰 계곡을 만나 이른 저녁을 해묵는다

머리도 많이 길었다. 긴 머리를 가져보고 싶었는데 머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길어서 묶고 다닐만큼 길어버렸다.

늘 긴머리를 가져보고 싶었는데 ㅋㅋ 왼쪽이 PCT 초반, 오른쪽이 한번도 안짜른 4개월 ㅋㅋ

4개월이 넘도록 1kg가 넘는 무거운 사진기를 목에 메고 다니고 다니다 보니 거북 목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런건 들고 다녀서 무엇을 하나 싶었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또 멈춰서서 사진을 엄청나게 찍어댔다.

힘이 들긴 했지만 새벽에 행군을 마치고 텐트에 누워서 사진을 돌려보는 재미도 있었고 사진들이 책을 쓸 때도 엄청나게 도움이 되었고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사진을 보면 그 때의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사진은 참 좋다.

반영이 아름다운 오레곤의 호수

 
 
노을을 배경으로 한 계곡 ​

 

다음 날

점심이 다 되어갈 때쯤 물만 나타나면 밥을 해먹어야지 생각했는데 갑자기

'Trail Magic!'

박스에 적힌 문구를 발견하자마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혹시나 오래된 거라 없으면 어떻하지 하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화살표를 따라 걸어가니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오기 시작했다.

PCT에서는 트레일 엔젤(하이커들을 유, 무형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물이 잘 없어 힘이 드는 사막 구간인 South California에서는 특히 자주 볼 수 있고 시에라 이후에서는 사실상 거의 보기가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깊은 산중에 먹거리를 가져다 놓겠는가. 그럼에도 여전히 미국인들의 선의를 산중에서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날 이었다.

트레일 매직!!

휴가를 놀러가는 대신 봉사를 하는 미국인들

수박에 소세지에 바나나에 초콜렛을 녹인 디저트까지 정말 배터지게 먹고 나서야 길을 나섰다. 그들에게 담배도 몇까치 얻고, 탄산음료도 2개 챙겨 배낭에 넣었다. 이런 이벤트가 몇 시간은 내리 걷게 해주는 에너지를 또 채워주었다.

얼마 걸었다고 금새 또 배고파져 궁디 깔고 밥해먹는다 ㅋㅋ ​

 

저녁을 먹고 다시 걸음을 바삐했다.

해가 산 넘어 가고 어두워지면 이젠 더 이상 풍경은 볼 수 없고 랜턴 하나에만 의지해서 걸어야한다.

자정이 넘고 새벽 1시, 2시 시간이 점점 갈수록 은진이와 점점 더 가까워져간다. 드디어 오늘은 하루에 60km를 넘게 걷는 대기록을 세우고서야 걸음을 멈추고 텐트를 쳤다.

온 몸이 축 늘어진 파초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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