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T, Pacific Crest Trail] 80화. 헬레나 할머니
본문 바로가기
2018년 미국 PCT(Pacific Crest Trail)/Washington

[PCT, Pacific Crest Trail] 80화. 헬레나 할머니

by 빵호빵호 2023. 5. 5.
728x90
728x90

호수를 지나면서 경치가 아름다워 잠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때마침 아저씨가 있어 그 옆에 멈춰 배낭을 내렸다.

"안녕. PCT를 하는 중이니?"

"네. 맞아요."

"어젠가? 할머니를 한 분 만났는데 할머니가 76세라고 하더라구. 근데 그 할머니가 PCT를 하는 중이더라."

"76세 할머니가 PCT를 하고 있다고요?"

"그러니까. 멕시코에서부터 걸어온거라고 하던데 엄청나지?"

"와...."

2,200마일을 지난다

대학 교수를 하고 있다는 아저씨는 휴가를 내서 이 깊은 산 중으로 들어온거라고 했다.

아저씨와 조금 더 대화를 나누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하루종일 걷다보면 시간은 잘 가지 않는 것 같지만 또 하루는 금새 지났다.

어느새 밤이 되어 온 세상이 깜깜해졌다.

은진이는 밤을 무서워해 원래는 둘의 스피드로 알아서 걷는데 이번에는 내 바로 뒤에 붙어서 빠른 걸음으로 쫓아왔다. 적당한 잠자리를 찾아야하는데 길은 계속 산중이라 난감했다.

"진아 앞에 불있다."

차 소리도 들리고 분명 누군가가 있을듯했다. 생각보다 훨씬 좋은 곳에 잠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불빛이 있는 곳에 도착해 배낭을 내려놓고 시선을 돌리니 커다란 캠핑카 두대가 있었고 5~6명의 사람들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희도 음식 좀 주실 수 있어요?"

매번 사람들 볼 때마다 구걸하는게 일이라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뭔가 모를 부끄러움 같은게 있었다.

그럼에도 이겨내고 또 물어보았다.

"물론이지."

그들은 사슴 사냥중이라며 고기와 소세지, 어느 아저씨는 와이프가 만들어줬노라며 블루베리 케익까지 끝없이 먹을 것을 건내주었다.

사람을 만날 때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PCT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들의 이야기도 듣고 나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자그마한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이제는 많이 추워져 아침에 일어나면 텐트가 얼어버린다

I bet, You bet을 입버릇처럼 말하던 톰 아저씨

다음 날 아침까지 톰에게 실컷 얻어먹고 길을 나섰다.

'혹시?'

시선 앞 쪽에 할머니 한분이 앉아 밥을 먹고 계셨다. 왠지 헬레나 할머니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걸음을 멈췄다.

"안녕하세요. 혹시 헬레나 할머니에요?"

"그래. 어떻게 아니?"

"어제 어떤 분을 만났는데 할머니에 대해서 얘기하더라구요. 정말 할머니가 76세 맞나요?"

"하하. 그래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온지 아니?"

"어떻게요?"

"난 스웨덴에서 왔고 PCT를 알게되고 죽기 전에 꼭 PCT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멕시코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난 단 하루도 쉬지 않았어. 보급해야하는 날은 하루만 쉬고 다음 날 출발했고 어떤 날은 보급만 하고 조금 쉬었다가 다시 출발하고. 그런 것들이 내가 여기 있을 수 있는 이유야."

생각해보니 할머니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는데 아마도 우리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거나 조금 빨리 출발했을텐데 그 동안 서로 앞치락 뒷치락 하며 걷다가 드디어 만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마을에 들어가는 날은 최대한 오전 중으로 들어가 다음 날까지 보통 이틀은 쉬었는데 할머니는 76세의 가느다란 몸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자신의 걸음을 해온것이었다.

"할머니 꼭 캐나다 국경까지 건강히 갈 수 있길 바래요."

"너도 그러렴."

겨울이 다가오는 워싱턴은 눈이 가장 문제였다. 할머니가 눈으로 인해 큰 사고없이 무사히 캐나다 국경에 닿길 바랬다.

76세의 몸으로 PCT를 도전한 헬레나 할머니
728x90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