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T, Pacific Crest Trail] 28화. 악마의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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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국 PCT(Pacific Crest Trail)/South California

[PCT, Pacific Crest Trail] 28화. 악마의 구간

by 빵호빵호 2022.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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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마지막 구간이 시작되었다. 이 구간을 혼자서해야했다.

Rae 할머니가 트레일 헤드까지 태워줘 작별의 포옹을 나눈 후 걸음을 시작했다. 바람의 언덕답게 엄청난 바람을 뚫고서 오르막을 올랐다.

이럴 땐 바람이 별로 안부는데도 테하차피가 바람의 언덕으라는 말에 바람이 세다고 느끼는지 정말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렇게 느끼는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언제나 마을에서 복귀하는 날은 음식이 늘어 가방이 무겁다 ​

 

가방은 역시나 묵직했다.

다음 마을까지 일주일간 먹어야할 음식을 다 지고 가야했기에 첫날의 가방은 항상 무거웠다.

 

 
 
사막 마지막 구간의 시작

초코 프레즐 과자를 사와서 가방에 끼워놓고 쉴때마다 먹고 콜라도 챙겨와서 마시니 꿀맛이었다.

마을에서 복귀할 때는 꼭 콜라를 사와서 트레일에서 마시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음 번에 쉬려고 배낭을 내려놓고 과자를 넣어둔 자리를 보니 없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분명 떨어진게 맞는데도 가방을 샅샅이 찾고 또 찾았다. 바보같은 마음을 달래고 또 열심히 걸었다.

이윽고 물 포인트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많았다. 물을 받아 라면을 끓여 먹고 쉬고 있었다. 그런데 책가방을 메고 토끼처럼 걷는 커플이 있었는데 손에 내 과자를 들고 흘린 사람 없냐고 물어왔다.

"That's mine"

그랬더니 과자를 건네 주는데 예전부터 둘다 마리화나를 엄청펴서 편견을 갖고 안좋게 봤는데 역시 사람은 쉽게 생각할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그냥 낼름 먹었을텐데. 고마워서 마을에서 삶아온 계란을 두개 건냈다.

마리화나를 사랑한 약 커플, 하지만 참 선했다

조금 더 걷다 첫날은 무리하지않고 잠자리를 잡았다.

산 중 어느 곳이든 내 쉼터가 된다 ​

다음 날

혼자서 걷는 것은 외로웠다.

은진이와 함께 걸으면 맘 속으로 계속 신경쓰고 기분도 맞춰줘야하고 여러가지로 힘든 부분이 많기도 했지만 그래도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은 모양이었다.

역시나 사람은 몸도 마음도 혼자서 사는 것은 안되나보았다.

 
 

오늘도 열심히 걸었다.

걸음을 마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에 한 팻말을 보았다.

'여기서부터 42마일은 믿을만한 물 소스가 없어요.'

'헉....'

중간 중간에 워터 캐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사막에서 우리는 항상 최악을 생각하며 걸어야했다.

1L짜리 물을 다섯통 들고 간다고 해도 60km를 넘게 버틸 수는 없었다. 아끼고 아끼면 10km에 1L 정도로 버틸 수는 있는데 뙤약볕 아래에서는 거의 불가능했다.

사람들이 꽤나 많았는데 다들 밤이나 새벽에 출발할거라고 해 나도 새벽에 출발하기로 마음을 먹고 일찍 잠을 청했다.

42마일, 대략 60km 정도 믿을만한 물이 없다고 한다

'아 귀찮아... 아 귀찮아...'

숲 속에서 자서 몰랐는데 귀찮은 몸을 들고 텐트를 나가 보니 매우 밝았다.

'좆됐다...'

시계를 보니 9시가 넘어있었다. 급한 마음에 텐트를 접고 물을 받아 길을 나섰다.

Z bag이 은진이와 나는 지배기라고 불렀다. 그는 쇼핑백 가방을 손으로 들고 걸었다 ​

 

마지막 물 포인트, 물이 콸콸 나온다 ​ 
 

 

숲이 있어 좋았다

숲이 있어 좋았는데 고개를 하나 넘자 금새 그늘 하나 없는 사막이 시작되었다. 그늘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물 마시는 양을 달리 만들었다.

60km 넘게 안정적인 물 공급원이 없지만 워터 캐쉬가 10km 지점, 30km 지점에 있다고는 해서 조금 기대를 했다. 10km 지점에 가니 다행히 물이 많았다. 마신물 1L를 채우고 또 넉넉하게 마시고 다시 출발했다. ​

그늘 없는 사막이 참 잔인하게 느껴진다 ​

 

예티의 마법, 정말 사막 한 가운데 물이 마법사의 기적처럼 느껴진다

테하차피부터는 조슈아 나무를 볼 수 있었다. 커다란 선인장 나무인데 생긴게 독특해서 인상 깊었다. 잎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키가 큰 선인장이라 그 아래에서 쉬고있는 하이커들도 볼 수 있었다.

해는 이제 점점 내 머리 바로 위에 있어 참으려 했지만 몸은 자꾸만 물을 달라 소리치고 있었다.

 
 
조슈아 나무가 만드는 그늘 아래 하이커들 ​

 

너무 더워 버틸 수가 없다 ​ 
 

 

나무그늘 하나 없는 사막길

드디어 1000km를 지난다. 물론 3300km 더 걸어야 하지만 ​

 

햇살이 너무 강해서 걷기 힘들었지만 일단은 최대한 걸어 놓는게 좋을 것 같아 유혹을 뿌리치고 걸었다. 15km를 걷는동안 물을 엄청나게 마셔 점심때가 되니 1L가 채 남지 않았다. 5L를 새로 받았는데 그새 4L를 마셔버렸다.

조슈아 나무 밑에 숨어 점심을 먹고 누워 있자니 뜨거운 바람에 잠이 깼다.

조슈아 나무 밑에서 잠을 자는데 부는 뜨거운 바람이 용광로 속 같았다

떠날 준비를 하는데 하이커 타운에서 봤던 한국인 지훈이가 왔다. 걸음이 빨라서 앞으로 다시 볼 일이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물어보니 설사병이 나서 며칠 앓아 누웠다가 이제 겨우 괜찮아 졌다고 했다.

그래서 사막의 마지막 구간은 그와 같이 걷기로 했다.

 
 

보통 10km에 1L정도 물을 마시는데 어찌나 더웠는지 25km만에 6리터의 물을 마셔서 워터캐쉬까지 5km가 남았는데 물이 하나도 없었다.

 

진작에 갈증이 나 있던 상태라 계속 목이 말라 더 걸을수가 없었다. 자리에 퍼져서 있으니 지훈이가 곧 따라와 자기는 물을 별로 안마신다고 이번 구간에도 2L만 가지고 다녔다고 했다.

엄청났다. 지훈이한데 물을 수혈받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지훈이가 아니었으면 정말 끔찍하다.

하루종일 괴롭히고 사라지는 해

 

워터 캐쉬에 도착하니 물이 넘쳐났다. 사막에선 정말 물이 꿀이었다. 수 많은 물통을 보니 마음이 확 놓였다.

이제 힘든 물이 없고, 그늘이 없는 힘든 구간은 끝이났다. 지훈이도 이내 도착해 저녁을 같이 먹고 쉬고있는데 갑자기 경찰차가 나타났다.

우리도 느린편이었지만 하이커 한명이 사막을 두달을 넘게 걸었는데 이제 지쳐 트레일 오프를 하려고 엄마를 불렀는데 워낙 생야생이다 보니 엄마가 아들을 도저히 찾을수가 없어 경찰에 연락해서 온 거였다 ㅋㅋ

한바탕 난리가 나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마지막 워터 소스에서 30km 지점에 있던 워터 캐쉬, 이 물이 없었으면 진짜 마의 구간에서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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