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 마디아프라데시(Madhya Pradesh), 아우랑가바드(Aurangabad)] 인도 불교 미술의 정수, 아잔타 석굴(Ajanta C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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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인도 여행

[인도여행, 마디아프라데시(Madhya Pradesh), 아우랑가바드(Aurangabad)] 인도 불교 미술의 정수, 아잔타 석굴(Ajanta Caves)

by 빵호빵호 2023.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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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랑가바드에 들리는 목적은 명확하다.

'아잔타 석굴과 엘로라 석굴'

두 석굴은 불교 예술의 정수로 아잔타 석굴은 아우랑가바드에서 100km 정도, 엘로라 석굴은 30km 정도 떨어져있다.

두 석굴 모두 워낙 거대하기 때문에 하루씩은 시간을 내어서 봐야한다.

오늘은 먼저 아잔타 석굴로

아잔타 석굴은 아우랑가바드 센트럴 버스터미널에서 일반버스로 121루피로 3시간 가량 걸린다.

AC(에어컨) 버스는 하루에 한대로 오전 8시에 가서 오후 5시에 돌아온다.

아잔타(Ajanta) 석굴

나무위키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다시 5세기부터 7세기의 두차례에 걸쳐 조성되었는데, 주로 후반부인 굽타 왕조 시대에 집중적으로 지어졌다. 따라서 굽타 양식의 대표작으로 불리며 인도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이다.

사원은 총 29개의 석굴로 구성되어 있으며 (엘로라는 34개) 반원형의 현무암 절벽을 뚫어서 조성되었다.

7세기 이후 불교가 힌두교에 흡수되거나 이슬람의 공격을 받으면서 쇠퇴하게되면서 아잔타 석굴은 세간의 관심 속에서 멀어져 그곳에 이르는 길마저 밀림 속에 파묻혀 버렸다. 그러고 1천 년이 넘게 잊혔다가 1819년에 호랑이 사냥 중이던 영국 동인도 회사의 병사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현대에는 인도 불교 미술의 정수를 담은 유적으로 높게 평가받는다.

아잔타 석굴로 오르는 입구

맨처음 인상은 길게 늘어선 석굴의 모습에 입이 딱 하고 벌어졌다.

중국의 삼대 석굴도 상당히 멋있었지만 아잔타 석굴은 불교의 본고장에서 탄생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아잔타 석굴 사원은 5개의 차이트야 (9, 10, 19, 26, 29번 석굴)와 24개의 비하라로 구성되어 있다.

차이트야는 (chaitya)는 굴 내부에 두 줄로 커다란 돌기둥과 회랑이 있고 그 안쪽에 스투파 (탑) 혹은 불상을 모신 작은 사원이다.

비하라 (vihara)는 승려들의 참선공간으로 돌로 만들어진 가구가 비치되어 있고 설법을 위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한국의 가람 배치로 보자면 차이트야는 금당, 비하라는 강당의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가람배치(伽藍配置)란 말은 사찰 건축의 형식화된 틀, 혹은 정형화된 공간배치를 의미한다. 불교사원을 건축할 때는 중요한 건물들, 즉 금당(金堂), 탑(塔), 문(門), 회랑(回廊), 강당(講堂), 경루(經樓), 종루(鐘樓), 승방(僧房) 등의 규모와 상호간의 거리 및 위치 등에 공간적인 규칙성이 있는데 이를 가람배치라고 할 수 있다.

1번 석굴부터 24번까지 쭉 순서대로 있고 다리를 건너 25번부터 29번 석굴까지 있다 ​

 

제일 먼저 1번 석굴을 만날 수 있었다.

동굴 내부 벽면에는 불교 회화를 볼 수 있었는데 인도 회화의 금자탑으로 알려진 프레스코화로 소석회(消石灰)에 모래를 섞은 모르타르를 벽면에 바르고 수분이 있는 동안 채색하여 완성하는 회화이다. 벽화화법 중 대표적인 것으로 기원전부터 로마인에 의해 그려져 왔다고한다.

당시의 기술로 채색을 하는 것도 신기하고 상당한 회화 실력이 있었던 것 같다.

벽화에 색이 칠해져있다

1번 석굴의 불상

본격적으로 길을 따라 이동하며 석굴 하나하나 방문했다.

이런 석굴이 정말 대단한 점은 만들어서 하나하나 이동시킨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파내면서 만들었다는 점이 정말 대단하다.

석굴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대들보 배치부터 미술뿐 아니라 건축학적 조예도 상당히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석굴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깊은 곳에는 불상을 모셔놓았다.

불교에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가 있는데

소승불교에서는 이상적인 삶의 목적이 아라한이라고 하여 깨달음을 얻은 성인이 되는 것이 목적이지만,

대승불교에서는 이것을 이기적 모습이라 규정하고 보살이 되는 것이 이상적 삶이라고 한다.

인도에서 개혁의 노력으로 발생한 대승불교는 한나라 때 중국으로 건너가 몽골·티베트·한국·일본 등 이른바 북방불교의 주류를 형성하게 된다.

아잔타 석굴은 불상 조성을 중시하는 대승 불교가 후대이므로 불상이 있는 굴이 후대 (5 ~ 7세기)에 조성된 것을 가능성이 높다.

소승 불교의 입김이 강한 남방 불교의 흔적이 남은 전기 석굴과 대승 불교의 영향을 받은 북방 불교의 흔적이 서로 대비되면서도 공존하는 모습은 아잔타 석굴의 가치를 드높힌다고한다.

여담으로 인도 전역에 불교 석굴은 약 1,200여개가 있는데 그중 900여개가 마하슈트라 주에 있다고한다.

 
 
천년도 넘은 조각 실력이 상당하다
 
 

 

인도 여행을 하다보면 이렇게 사진을 찍자며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다​

기둥 곳곳에도 그려진 프레스코화 ​ 
 

 

아잔타 석굴 중 가장 아름다운 조각장식으로 조각되어 '조각가들의 보물 상자'라고 불리는 19번 굴, 7개의 코브라 머리를 가진 나가왕과 하나의 코브라 머리를 가진 그의 부인 나긴스의 상이 있었다.

24번 석굴까지 구경을ㅇ 마치고 길을 따라 다리를 건너면 25번~29번 석굴이 있다.

그리고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는데 아잔타 석굴의 전경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거대한 석굴을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여서 만들었을까?

와불

중국에도 이런 가마가 있더니 중국과 인도가 제일 자본주의가 심한 것 같다

미술과 종교에 조예가 깊지 않다보니 석굴 구경을 마치는데는 3시간이면 넉넉했다.

정해진 버스 시간 때문에 매표소에 있는 식당을 들러 끼니를 먹고서 숙소를 향한다.

전망대에서는 이렇게 아잔타 석굴의 전경을 볼 수 있다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석굴, 정말 웅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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