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 마디아프라데시(Madhya Pradesh), 아우랑가바드(Aurangabad)] 미니 타지마할, 비비 카 마크바라(Bibi Ka Maqb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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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인도 여행

[인도여행, 마디아프라데시(Madhya Pradesh), 아우랑가바드(Aurangabad)] 미니 타지마할, 비비 카 마크바라(Bibi Ka Maqbara)

by 빵호빵호 2023.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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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랑가바드에서 우리의 마지막 일정은 가난한 타지마할로도 불리는 '비비 카 마크바라(Bibi Ka Maqbara)'였다.

비바 카 마크바라는 숙녀 혹은 여인의 무덤이라는 뜻으로 아우랑제브의 왕비 사후에 만든 타지마할과 같은 무덤이었다.

비비카 마크바라라는 무덤을 알기 전 먼저 아우랑제브 왕과 아우랑가바드 도시의 역사에 대해서 알면 좋을 것 같아 찾아보았다.

아우랑제브(Aurangzeb)​

작성자 dxzone

아우랑제브는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에 무굴제국을 건설한 초대 황제 바부르, 쇠퇴했던 초기 왕국을 재건한 2대 후마윤, 제국의 영토를 인도 북부와 데칸고원까지 확장하여 진정한 제국을 만들었다고 하여 대제로 불리는 3대 악바르 1세, 별 다른 업적이 없는 4대 자한기르, 조부 악바르1세처럼 영토확장을 하고 아그라의 타지마할과 올드델리의 붉은 성이 있는 성곽도시 샤자한바드를 건설한 5대 샤 자한의 뒤를 이은 6대 황제다.

아우랑제브는 증조부인 3대 악바르 대제처럼 국토 확장에 치중하여 인도 대륙 전체를 최초로 평정했지만 통치 후반기에 이슬람 위주의 정책으로 악바르가 폐지했던 인두세(지즈야, 비이슬람인에게 걷는 세금)를 부과했고 힌두교도들의 감정을 손상시키고 토지에 대한 조세정책의 실패로 강대했던 무굴제국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예전 로마인들이 세계 정복을 할 때 비로마인들에게도 시민권을 주고 정치적 활동도 가능하게 해줌으로써 피정복민들에게도 로마인이라는 자부심과 명예를 심어주었고 로마인이라는 결속력을 강화했다고 한다. 천년이 넘는 대제국이 유지되려면 전쟁만이 아니라 제도가 뒷받침이 되어야한다.

아우랑제브 황제 ​

 

아우랑가바드(Aurangbad)

두산백과

1610년에 건설된 도시로 지명은 본래 카드키(Khadki)로 불리었다. 후에 무굴제국의 제6대 황제가 된 아우랑제브(재위 1658~1707)가 황태자였던 시기 1636년 무굴제국의 샤 자한 황제가 데칸 고원에 있던 아나드나가르 왕국을 합병한 이후 데칸 지방의 태수(太守)로 부임시켜 아우랑제브 자신의 이름을 따 개칭하였다. 그 후 하이데라바드 왕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인도 독립 후 하이데라바드 주에 속하였고, 이후 1956~1960년 간은 옛 봄베이 주에 편입되었다.

1960년 5월 봄베이 주가 마하라슈트라 주와 구자라트 주로 분할되어 마하라슈트라 주에 포함되었다.

비비 카 마크바라(Bibi Ka Maqbara)

작성자 dxzone

샤 자한의 세째 아들로 태어나 형제들과 왕위 다툼을 하면서 아버지를 감금하고 무굴 제국의 제6대 황제가 된 아우랑제브가 부인이 다섯째 아이를 낳고 바로 죽자 자기 어머니 뭄타즈 마할이 묻혀 있는 타즈 마할을 본 떠서 만든 무덤으로 1668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1년만에 만들었다고 하니 꽤나 많은 인력과 재력이 동원됐을 것이다. ​

가난한 타지마할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타지마할과 비교시에는 조금 후달려보이기는 하지만 타지마할과의 비교 없이 보다면 손색없이 훌륭한 무덤이기도하다.

아우랑가바드의 '비비 카 마크바라'

아그라의 '타지마할'

타지마할에 비하면 빈약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앞쪽에 정원이 펼쳐져있다 ​

 

JALI 창문을 달아 놓은 것이 보인다.

JALI는 망이란 뜻으로 장식적인 패턴을 가진 구멍을 판 돌판으로 만들어 햇빛과 바람이 들어오게 만든 것이다. 건물에 이것을 설치하면 이 구멍을 통해 바람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서 공기의 온도가 낮아 진다고 한다.

곳곳에 창을 내놓았다

인도 여행을 하다보면 사진을 같이 찍자거나

내 사진기를 보고서는 사진을 찍어달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메일을 제외하고선 사진을 줄 방법이 없기는한데 그래도 찍어달라고 한 뒤 보고서는 따봉을 한 뒤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타지마할과는 달리 바닥을 볼 수 있는데

누군가의 무덤 윗자리에 양탄자를 깔아놓았고 그 옆에 수많은 돈들이 뿌려져있다.

인도에서 저 돈이 안사라지고 보전이되다니?

옛 왕비의 노잣돈은 건드리지 않는 인도인들의 고인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제 더욱 남쪽으로 뭄바이를 거쳐 고아로 이동할 예정이다. 세달의 인도 여행 일정이 서서히 끝이나간다.

묘자리 위에 수 많은 돈이 노잣돈을 떠올리게 한다 ​

 

뒷마당에도 펼쳐진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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