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전문 해설인과 함께한 조선 왕들의 사당, 종묘
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서울, 종로구] 전문 해설인과 함께한 조선 왕들의 사당, 종묘

by 빵호빵호 2023. 3. 10.
728x90
728x90

몇 주 전부터 가보기로 했던 종묘를 드디어 방문하게 되었다.

사실 종묘보다는 인근의 광장시장에 들러서 떡볶이와 빈대떡에 한잔하는게 메인 이유였지만... ㅋㅋ

종묘는 종로3가역에서 내리면 걸어서 금방 도착한다. 바로 맞은편에는 세운상가가 있다.

 

세계 문화유산 종묘

종묘 입구까지는 넓은 마당이 펼쳐져있는데 우리가 갈때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어린 친구들과 가족들이 나와서 놀고 있어서 참 보기 좋았다.

종묘 입구까지는 넓은 길이 펼쳐져있다

입장료는 청소년까지는 500원, 성인은 1,000원으로 매우 저렴하다.

입장하니 신로가 펼쳐졌고 바로 옆쪽에 무료 해설투어가 있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가운데 길은 신로, 좌측은 왕의 길, 우측은 세자의 길이라고 한다.

무료 해설 시간

 

매월 마지막 수요일 : 10시, 11시, 13시, 14시 15시

토요일 : 10시, 11시, 13시, 14시 15시

일요일 : 9시 20분 부터 1시간 간격으로

사실 이렇게 구경와도 눈으로만 한번 쭉 둘러보는게 다라서 방문해도 잘 모르고 넘어가는 것들이 많은데

이번에는 어떻게 난생 태어나 처음으로 해설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무료 해설은 토요일, 일요일에 진행한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도 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가 11시 좀 넘었었는데 20분 뒤라 기다리고 있으니 해설사 아저씨가 오셨다.

종묘는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종은 마루종(宗)으로 조선시대에는 이순신을 모신 현충원과 같은 고위직을 모신 묘가 있고, 또 각 집안마다 자신들의 조상을 모신 가묘도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왕들을 모신 종묘가 으뜸이라고 했다.

종묘는 크게 제사를 준비하던 곳과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나뉘는데

5번인 향대청은 신하들의 제사를 준비하던 곳이고

6번인 재궁은 왕과 왕세자가 제사를 준비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3,4번은 정전과 영녕전으로

3번인 정전이 태조를 비롯한 왕으로 추존된 임금들을 모신 곳이고

4번인 영녕전은 태조 이성계의 4대조(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추존왕과 연산군, 광해군, 영친왕 등을 모신 곳이다.

왕과 왕세자가 제사를 준비하는 재궁으로 가기 전 연못을 보았는데

연못은 테두리는 사각, 중앙은 원으로 만드는데 유교에서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사각이라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왕들이 입는 옷인 곤룡포에는 가운데 원이 들어가고 신하들의 옷에는 사각이 들어간다고 했다.

재궁으로 향하는 길에는 돌길이 만들어져있는데 가운데는 신로, 우측은 왕로, 좌측은 왕세자로라고했다.

신로라고해서 죽은 왕의 영혼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 신주를 모신 가마가 다니는 길이라고 한다.

 

원래 유교에서는 향이 아닌 쑥을 이용하는데 조선의 유교에서는 향이 이어져 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조선 전 고려는 불교 국가였는데 500년이 넘게 이어져 온 문화이다보니 갑자기 쑥으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제사를 모시러 가는 왕의 길

지금으로 치면 아파트 관리소와 같은 곳

왕이 제사를 준비하던 곳, 재궁

광화문이나 경복궁의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종묘의 건물들은 전체적으로 수수하다.

외적으로 보여주는 것보다는 엄숙한 분위기와 제사를 지내는 그 본연에 집중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멋지게 생긴 해설사 아저씨

왕은 항상 남쪽을 바라보고 왕세자는 동쪽에 위치한다고 했다. 그래서 왕세자를 동궁마마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제사를 준비하던 건물은 총 3개가 있었는데 왕의 건물은 남쪽을 바라보고 동쪽에 왕세자가 제사를 준비하는 건물이 있었다.

 

왕이 제사를 준비하던 건물,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왕세자가 제사를 준비하던 건물, 동쪽에 위치해있다

제사는 새벽 1시에 시작된다고 했다.

지금과 같은 시계도 없던 조선시대에는 물시계가 그 역할을 대신했고 장영실의 물시계가 나오기 전에도 물시계는 있었으나 정확도가 떨어졌다고 한다.

불천지우 왕들의 신주를 모신 곳, 정전

안타깝지만 정전은 2020년부터 보수 공사를 하고 있어서 둘러볼 수가 없었다.

2024년까지 총 4년의 보수 공사로 규모가 꽤나 큰 공사였다.

공사 중이라 내부를 볼 수는 없다 ㅠㅠ

정전 입구, 화려하지 않고 수수하다

종묘대제는 전주 이씨 가문에 의해서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매년 5월, 11월에 진행되는데 예약을 하고 와야하지만 동일 방식으로 수 많은 왕들에게 제사를 지내다보니 보다가 지겨워서 나가는 사람이 많아서 조금만 기다리면 자리가 난다고 했다.

실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새벽 1시부터 시작해서 6~7시간 정도 진행되다보니 화장실도 못가서 바지에 오줌을 지린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종묘대제의 사진 ​

 

정전에 모신 19개의 신위

정전 ​

 

위쪽에 위치한 전하판위, 아래 쪽에 위치한 세자판위, 모두 제사 지내러 가기 전 대기 장소이다

지붕의 위에는 하얀색으로 발린 것을 볼 수 있는데 양성이라고 한다.

특별한 건물에만 들어가는데 석회로 만들어서 하얀데 멀리서 보면 금색으로 하는 것보다 상당히 고품이 있다고 한다.

지금 보수중인 정전의 지붕도 양성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성계의 4대조와 추존왕을 모신 곳, 영녕전

보수 공사로 정전은 볼 수 없었지만 형태가 비슷한 영녕전을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영녕전은 최초에는 이성계의 윗대인 목도, 익도, 도조, 환조 4사람을 모신 곳이었고 나머지는 다용도 실이었으나 신실로 확장되었다고 한다.

조선은 정통성을 중시했는데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지고 왕으로 등극한 이성계에게는 자신의 윗대가 왕이 되어야 정통성이 강화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고조까지 4사람을 왕으로 등극시키고 정전에서 제사를 지내었다가 시대가 흐르면서 영정전으로 옮겨지게 되었다고 한다.

영녕전의 모습, 가운데 제일 큰 곳에 태조 4대조를 모신다고 한다

영녕전 신위 봉안도

조금 신기한 것은 문을 여닫을 수 있는 곳이 칸마다 있는 것이 아니라 구역마다 한개씩 있어서 그 곳을 통해서 들어가서 좌, 우로 이동해야한다고 했다. 이유는 기억이 안나네 ^^;;

사진상 3번째 칸에만 문을 여닫을 수 있다

영녕전에는 숙종 때 단종도 모셔지게 되었다.

원래 단종은 삼촌 세조에 의해 죽음을 당한 뒤 영월에 그 묘가 있었으나 신하들에 의해서 계속 종묘에 모시자고 거론되었으나 왕들은 지지부진 했다고 한다.

조선 왕조에서 적장자의 뒤를 이어 적장자가 왕이 된 경우는 단 두번뿐이었는데 단종과 숙종

조선에서의 전통성은 권력의 막강함을 상징하는 것이라 숙종 때에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단종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영녕전 제일 우측에는 조선의 마지막 왕 영칭왕의 신묘가 있는데

영친왕은 일제시대 때 일본으로 넘어가 일본사람이랑 결혼하였다가 해방이후 이승만 대통령 당시 한국으로 오려했으나 이승만 대통령이 거부했다고 한다. 후에 박정희 대통령 때 돌아온 뒤 사망 후에 전주 이씨들의 요구로 모셔지게 되었다고 한다.

영녕전의 돌담 ​

 

혼자서 둘러봤다면 그냥 이런 것이 있구나 하고 말았을텐데 해설사와 함께하다보니 생각보다 배우는 것도 정말 많았고

기억에도 더 오래 남았다.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걸렸는데 전혀 시간이 아깝지 않았고 앞으로도 이렇게 해설사를 통한 투어를 적극적으로 다녀야겠다.

세운상가 건물에서 바라본 종묘
728x90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