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T, Pacific Crest Trail] 77화. 재회(feat. 터널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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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국 PCT(Pacific Crest Trail)/Oregon

[PCT, Pacific Crest Trail] 77화. 재회(feat. 터널폭포)

by 빵호빵호 2023.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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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떴을 때 비는 그쳤지만 산중은 안개로 가득찼다.

밤새 내린 비에 다 젖은 텐트를 구겨 접어 짐을 싸고 젖은 바지에 발을 집어 넣는 순간 '악!' 하고 소리가 났다. 굳게 마음을 먹고 깊숙히 다리 끝까지 집어 넣고 나니 온몸이 시려 부르르 떨렸다.

'드디어...'

오늘은 3주 조금 넘는 기간 동안의 혼자서의 트레킹을 마치고 은진이를 만나는 날이었다. 다른 말로는 오레곤도 다 지나 이제는 워싱턴의 국경에 도착한 것이었다.

'한국인 대학생들은 벌써 끝이 났겠지?'

거의 한달 전에 워싱턴 국경을 시작한 친구들은 이미 이 길고 긴 여행을 마치고 다음 여행 혹은 한국으로 돌아갔을 것이었다. 그들보다 많이 늦었지만 나도 드디어 마지막 관문에 들어설 수 있었다.

안개 자욱한 산은 멋지다 ​

 

'이 미친 지옥으로 들어가지 마세요.'

오레곤에서 꼭 보고 싶은 것이 2가지 있었다. 하나는 오레곤 초반의 크레이터 레이터 호수, 하나는 오레곤 마지막에 위치한 터널 폭포.

터널 폭포를 보려면 PCT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들어섰다가 다시 PCT 길로 합류해야했는데 그 분기점이 되는 곳 입구에 쪽지가 하나 붙어있었다.

'이 까짓.'

무시하고 길을 들어섰다.

1시간쯤 걸었을까?

무너진 돌로 인해 갑자기 길이 끊어져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길은 보이지 않고 절벽 비스무리한 길을 내려와야했다. 흙 속에 겨우 뿌리 내린 작은 나무를 잡고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려왔다.

 
 
길이 무너져 절벽같은 길을 발 옆날을 이용해 비스듬히 내려와야했다 ​

 

'이거 가지고 지옥이라는겨?'

그때까지는 그 말이 우스웠다.

미드 베이츠 모텔에 나온 Eagle Creek는 드라마 속에서 너무나도 아름다웠었는데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Eagle Creek였다.

미드에 나온 길을 다 걸어보다니 ㅋㅋ

그런데 30분쯤 더 걸었나?

갑자기 쓰러진 나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보통 PCT에서 쓰러진 나무들은 가지가 다 잘려있고 몸통도 전기톱으로 잘라 길을 지나는데 큰 무리는 없는데 이번엔 가지도 쳐지지 않은 쓰러지지 얼마지 않은 나무들이 많았다.

산불이 최근에 났는가 보았다.

가지치기가 되지 않은 나무를 넘으려니 배낭에 걸려 가로막히고 옷에 걸려 가로막히고 죽을 맛이었다. 돌아가려니 한참을 빙둘러 가야해서 힘이 쭉쭉 빠졌다.

1시간에 5km 이상을 걷는데 2km를 걷는데 한시간이 걸렸다.

'아... ㅅㅂ'

욕이 절로 나왔다. 절벽을 내려왔는데 다시 올라갈 수도 없어 돌아갈 수도 없고 무조건 직진해야했다.

쓰러진 나무를 넘느라 죽는 줄 알았다

나무를 한 20개 넘었을까?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뭐가 그리 대단한 폭포라고... 여길 온다고 난리를 부린걸까?

'도대체 언제 나오는거여?'

불평 불만을 쏟아내며 걷고 있자니 드디어 쓰러진 나무들이 점점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꺾여진 길을 하나 돌자 드디어 터널 폭포가 나왔다.

'와....'

 
 
터널을 지나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것만 같다 ​

 

마지막 2달을 함께해준 그레고니 배낭

한동안 사진을 엄청찍다 은진이가 마을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걱정이되어 다시 길을 나섰다.

그런데 이번에 웬일...

다리가 불타서 철골만 남아있었다. 아래를 바라보니 꽤 높은 낭떠러지였다. 여기서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길을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일단 철골만 남은 다리에 올라보니 다행히 잘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유격하는 것처럼 옆으로 서서 한발씩 한발씩 움직여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다리를 또 3개나 더 넘어야했다... 휴

불타 철골만 남은 다리

드디어 산불 구간이 끝이났다...

터널 폭포로 들어가는 트레일 헤드에 도착하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캐스캐이드락까지는 또 30분 이상은 걸어야했다. 안간힘을 짜내 은진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곳을 지나면 벌금 1500불!'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을에서 터널 폭포로 들어가는 트레일 헤드 입구에는 산불이 나서 들어가면 벌금을 꽤나 세게 물어야한다고 적혀있었다. 난 반대로 왔으니 볼 수 없었나 보았다.

저 다리가 바로 God of Bridge

"오빠!"

마을 앞 입구에는 은진이가 서 있었다. 봉지 몇개를 들고 ㅋㅋ 아마도 한국 음식일 것이었다.

"진아. 내 언제올줄 알고 여기서 계속 기다렸는데?"

"몰라. 그냥."

은진이는 성격이 그랬다. 그냥 무덤덤하고 무던했다. 그래서 고맙고 좋았고 미안했다.

캐스캐이드락에는 원래 Shrek이라는 트레일 엔젤이 있었는데 하이커들이 와서 더럽히고 정리는 하나도 하지않고 가 지쳐서 이제는 트레일 엔젤 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의 집 문을 두드려보았더니 두 사람밖에 안된다면 괜찮다며 편하게 쉬라고 했다.

다행히 그의 집에서 빨래도 샤워도 하고 은진이가 사온 맛있는 한국음식도 해먹으며 편히 쉴 수 있었다.

드디어 마지막 관문 워싱턴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이렇게 한끼에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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