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T, Pacific Crest Trail] 85화. 인디언 썸머(Indian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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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국 PCT(Pacific Crest Trail)/Washington

[PCT, Pacific Crest Trail] 85화. 인디언 썸머(Indian Summer)

by 빵호빵호 2023.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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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양과 이미연이 나오는 영화 인디언 썸머를 아주 오래전에 보았다. 영화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인디언 썸머라는 그 단어 자체가 너무 멋있어 기억을 하고 있었다.

"인디언 썸머에요."

스노퀄미 패스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슈퍼가 있었다. 이 산골짜기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아저씨의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누구나 사연은 있는 법이라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인디언 썸머는 북미 대륙에서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기 직전 며칠 동안 여름이 되돌아온 듯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는 현상으로 그러고 보니 우기가 끝이나고 한동안 날씨가 정말 포근하고 따뜻했던 것 같았다.

"한 2주는 지속될 거에요. 그리고 나면 워싱턴에는 겨울동안 눈이 많이 와요."

우리는 대략 3주 정도 남았는데 아저씨의 말대로라면 혹은 운이 나빠 눈이 조금 일찍 온다면 마지막은 아마도 눈밭을 걸어 PCT를 마쳐야 할 것이었다.

"올해는 한국인들도 좀 보이던데 이제 거의 다 왔으니 힘내세요."

아저씨를 뒤로하고 또 다시 길을 나섰다.

새로운 영역이 또 시작된다 ​

 

아저씨에게 인디언 썸머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하늘은 더욱 청명한 것 같았다.

이 선선하고 포근한 날씨가 계속 이어지길 바랬다. 그와 별개로 스노퀄미 패스를 시작하는 산은 엄청 가팔랐다 휴~

수십분을 걸어 정상에 도착해 은진이를 기다리고 있자니 멀리서 한국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어머 안녕하세요~"

아주머니들과 아저씨 한분이 나를 보더니 인사를 건냈다.

"네. 안녕하세요."

"아니 우리 며칠 전에도 한국인 부부 봤었는데 한국인이 많은 것 같네요."

"혹시 음식 필요하지 않아요?"

"주시면 감사히 먹죠~"

아주머니는 가방에서 소고기 고추장, 신라면, 한국 반찬들을 있는대로 다 꺼내주었다.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들은 미국으로 건너온지 수십년이 됐지만 입만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은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스티븐 패스에서 시작해 여기 스노퀄미 패스까지 4박 5일의 하이킹을 하는데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남은 음식은 다 주는 거라고 했다.

특히 스노퀄미 패스~스티븐 패스 까지를 J-Section이라고 부른다고 했는데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어 무지 아름답다고 했다.

"며칠 전에도 그 부부한데 음식을 나눠주고 싶었는데 시작할 때라 음식이 모지랄 수도 있어서 하나도 못줬는데 참 운이 좋으시네요."

"하하. 감사히 잘 먹을게요."

"조심히 꼭 완주해요!"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는 그렇게 길을 나섰고 받은 음식으로 배낭이 가득차 버렸다.

하... 2400 마일을 걸어왔다 ㅋㅋ​

 

"진아 오늘 우리 조금 일찍 끝내고 라면이랑 한국 반찬 먹을까?"

은진이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먹어도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 갖가지 한국 반찬과 라면에 밥을 말아 먹고서 행복한 잠을 청했다.

추운 산에서는 불장난이 최고다

한국인 아줌마, 아저씨가 주셨던 한국 음식들, 오랜 세월 미국에서 살았다는데 입맛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다음 날 여전히 하늘은 쾌청했다.

어제 가득 넣은 한국의 힘을 품고서 길을 나섰다.

아줌마, 아저씨의 말대로 J-Section의 가을 경치는 너무 아름다웠다.

사진을 찍고 또 얼마지 않아 찍고 또 얼마지 않아 찍고 은진이가 앞으로 가는 것도 모른채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에라에서도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아주 오랜만에 사진을 찍는다고 몇 걸음 걷지 않고 멈춰서고 멈춰서고를 반복한 것 같다. 그러자 문득 시에라의 가을 산은 어떨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게는 생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기회가 고맙고 또 조금은 안타깝기도 했다.

이 쾌청한 인디언 썸머가 계속 되길 작게나마 희망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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