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T, Pacific Crest Trail] 88화. 겨울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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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국 PCT(Pacific Crest Trail)/Washington

[PCT, Pacific Crest Trail] 88화. 겨울 왕국

by 빵호빵호 2023.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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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코미쉬에서 이틀을 푹 쉬었다.

쉬는 동안 하이커들을 만났는데 어떤 하이커 둘은 이미 국경에 갔다가 캐나다로 넘어갈 수 없어 여기에 짐을 두고 국경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캐나다 국경에 닿으면 캐나다로 넘어가거나 아니면 미국에서 있어야 하는데 캐나다로 넘어가도 마을이 있는 곳까지 또 걸어야했고 미국에 있더라도 마을이 있는 곳까지는 걸어와야했다. 최소 히이 하이킹을 할 수 있는 곳까지 걸어오거나, 그게 또 몇십키로는 된다 ㅋㅋ

여하튼 그들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웠다.

짐을 챙기고 점심 즈음에 히치 하이킹을 해서 트레일로 복귀를 했다.

이틀 전에는 비가 내렸었는데 차 타고 올라가는 길에 어느 고도가 되자 온통 눈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걱정하던 겨울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설산은 볼때는 멋있지만 걸을 때는 괴롭다

 
 

 

눈이 쌓여있었지만 그렇게 춥지 않는 날씨 때문에 걸을 때마다 녹은 눈을 밟다보니 금새 다 젖어버렸다.

'아 이주일을 이렇게 지내야겠구나....'

또 괜시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헤이 호!"

땅만보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불렀다. 네이비와 파이어볼이었다. 오레곤에서 보고 실로 꽤나 오랜만이었다.

"왜? 돌아가고 있어?"

국경에 갔다가 돌아오는 것인지 트레일 오프를 하려는 것인지 또 다른 사정이 있는 것인지

"파이어 볼 신발이 찢어져서 발에 동상이 걸렸거든. 우린 여기까지 하려고."

눈물이 핑 돌려고했다. 이제 길어도 이주일만 더 하면 그렇게 바라던 국경인데 지난 수개월 대장정의 마지막을 코 앞에 두고 끝내야하니 울컥했다.

"난 만족해."

그들이 만족하면 그만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그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다시 길을 걸었다.

네이비와 파이어볼 커플 ​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는 산은 아름답다​

 

그렇게 춥지 않아 눈이 녹았지만 눈으로 젖은 신발 안의 발가락은 견디기 힘들만큼 차가워 걸으면서도 계속 꼼지락 거려야했다. 장갑을 낀 손도 얼어버려 하이킹 폴을 쥔 채로 계속 꼼지락 했다.

이제 정말 겨울이 시작된 것이 실감이 났다.

 
 
눈 덮힌 산은 하이커에겐 지옥이고 또 천국이다 ​

 

"진아, 여기서 오늘은 잘까?"

그만 걷자는 말에는 은진이는 항상 Positive다 ㅋㅋ

온 산에 눈이 덮혀 텐트를 칠만한 곳이 잘 없었는데 다행히 나무 아래 눈 없이 깨끗한 곳이 있었다.

텐트를 치려는데 손이 얼어 5분이면 칠 텐트를 20분에 걸쳐서 쳤다. 손이 얼면 허벅시 사이에 끼고 비벼서 녹인 다음 치고, 또 얼면 허벅시 사이에 끼고 손을 비벼서 녹이고 치고

저녁을 하는 동안 온기를 느끼고 싶어 젖지 않은 나뭇가지를 한 다발 주워왔지만 불이 붙을만 하면 꺼지고 불이 붙을만 하면 꺼져버려 결국 헛수고만 한채 텐트 안에서 라면을 먹어야했다. 그래도 국물이 몸을 따뜻하게 해주니 살 것 같았다.

이주만 더하면되는데 멀고도 멀게만 느껴졌다.

자그마한 텐트가 몇달째 우리의 고마운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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