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T, Pacific Crest Trail] 90화. 지옥같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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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국 PCT(Pacific Crest Trail)/Washington

[PCT, Pacific Crest Trail] 90화. 지옥같은 밤

by 빵호빵호 2023.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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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코미쉬에서 복귀한 이후로 계속 눈과 함께 했다.

오랜만에 고도를 계속 낮추더니 점점 공기가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반가웠다.

겨울의 산도 고도가 낮으면 초록이 가득하다

행복하면 그 행복이 언제 끝날지 몰라 불안하다고 했던가?

불안했다.

언제 또 고도를 높여야할지 몰랐지만 일단은 즐기기로 했다.

 
 
아름다운 워싱턴의 숲속

몇 시간 지속되는 싱그러운 푸름이 너무 만족스러웠다 ​

 

해가지기 시작하고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고도를 높이지 않은 곳에서 나름 따뜻하게 잠이들 수 있었다.

넓직했던 그 날의 보금자리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해가 쨍쨍했다.

맑은 날씨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한다. 좋은 기분을 안고 이 날씨가 하루종일 이어지길 바라며 걸음을 다시 시작했지만 어김없이 높아지는 고도에 불안함을 안아야했다.

 
 
맑은 날씨로 하루를 시작한다

해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차이가 극명하다

이제는 물이 너무차서 물 마시는 것도 부담이 된다

드디어 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발자국 패인 눈 속을 걷자니 어느새 또 신발이 다 젖어버렸다.

비로 인해 신발이 젖는 것과 녹은 눈으로 인해 신발이 젖는 것은 천지차이다. 발가락이 시려워 견딜 수 없어 걸으면서도 계속 꼼지락 꼼지락 거리는 수 밖에 없었다.

 
 
또 다시 시작된 눈길​

 

오르막을 오르는 일은 두렵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세시간 가량 걸어 오르니 어느새 정상이 나타났다.

저 앞에 놓인 수많은 산들 중 우리가 오르는 산은 어느 곳일까? 어디가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일까?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또 정상에 불어오는 산바람에 바위 위에 얹었던 궁뎅이를 다시 떼야했다.

저 멀리 우리가 넘어야할 수많은 산들이 보인다

다시 내리막

또 다시 고도가 낮아지자 산중의 눈은 사라졌다.

산을 올랐다 내렸다 올랐다 내렸다. 우리는 그렇게 오르내리며 조금씩 북을 향하고 있었다.

이 미친짓을 왜 하고 있는 것일까?

산 아래는 아직도 단풍이 있다

 

다시 또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어느새 시간도 늦은 오후가 되었고 어느 정도 선에서 잠자리를 마련해야 눈이 없는 곳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오르막은 고불고불 좁은 길이 이어진 스위치 백이었다. 스위치 백에 꺾이는 부분에 가끔씩 넓은 공간이 있어 잠자리를 마련할 수 있어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계속 좁은 길이 이어져 도저히 텐트 칠 공간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

다시 눈의 길이 시작되었다. 해는 지기 시작했고 산을 하나 넘는 건 불가능할 것 같고 다시 내려가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진아. 여기 괜찮은 거 같은데 그냥 여기 텐트 치자."

"응. 알았어."

텐트를 치는 내내 손이 시려웠다. 허벅지 사이에 손을 끼고 잠시 녹였다 다시 텐트를 치기를 반복해 무사히 마쳤다.

마른 나뭇가지와 불이 잘 붙는 솔잎들을 모아 버너로 불을 붙여보았지만 불이 붙었다가 금새 꺼지고 불이 붙었다가 금새 꺼졌다. 그렇게 20분을 넘게 불을 붙이기 위해 사투를 벌였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아... ㅅㅂ'

포기하고 텐트 안으로 들어가 라면을 끓였다. 바닥이 얼마나 차가운지 엉덩이가 얼어 붙는 것 같았다.

얼마 차이나지 않는 고도가 이렇게나 클줄이야.

라면 국물로 몸에 온기를 더한 뒤 바닥에 얇은 매트를 깔고 그 위에 침낭 하나를 또 깔고 입을 수 있는 옷은 다 챙겨 입고 은진이와 꼭 끌어 안았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침낭을 덮고서 잠을 청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미친 냉기에 발이 먼저 얼기 시작하더니 침낭 속의 우리 입김이 얼기 시작해 꼭 냉동실 같았다.

"진아, 괜찮나?"

"아니... 차라리 걸었으면 좋겠다."

등을 대고 바닥에 누웠다가 닿는 부분을 취소화 하기 위해 옆으로 돌아 누웠다. 그러고 나니 이번에는 팔 한쪽이 시려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정말 지옥 같았다.

아침이 찾아오니 정신이 혼미했다. 어떻게 시간이 지나간걸까?

괜히 동사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앞으로 일주일... 조금만 더 참아보자.

정말 지옥같았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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