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T, Pacific Crest Trail] 89화. 눈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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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국 PCT(Pacific Crest Trail)/Washington

[PCT, Pacific Crest Trail] 89화. 눈보라

by 빵호빵호 2023.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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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머리를 길게 길러보고 싶었다.

근데 좀 길면 불편해서 자르고 자르다가 이번 PCT를 하면서는 미국에선 머리 깎는 값도 비쌀테니 그냥 길러보기로 했다. 여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긴 머리를 가지고 사는지 모르겠다 ㅋㅋ

4월 말에 시작한 PCT였고 어느새 10월이 되었으니 벌써 머리를 깎지 않은지 5개월이 되었다.

10년 전 열심히 길렀던 머리를 파마했는데 하루만에 오른쪽과 같이 변해버렸다 ㅋㅋ 파마하고 속상해서 자고있다 ㅋㅋ​

 

어느새 머리도 길어 묶을 수가 있게 됐다

겨울의 워싱턴에도 버섯들은 잘 자라고 있었다.

미국의 버섯들은 독튼한 것들이 많아 사진을 찍는 재미가 있었다. 다만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사진을 찍으려니 여간 괴로운 것은 아니었다.

 
 
 
 
 
 
 
 

눈이 내리긴 했지만 모든 곳에 눈이 쌓인 것은 아니었다.

눈이 쌓인 지점을 확인해보니 고도 1,700m 이상의 지점에서는 확실히 눈이 쌓였고 그 이하로 내려가면 다행히 아직은 푸른 산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너무 추워 앉아서 쉬는 것이 오히려 더 괴로웠다.

"안녕. 난 다이아몬드라고 해."

"안녕하세요."

"많이 춥지? 위스키 한잔할래?"

그는 배낭 옆에 꽂힌 위스키를 꺼내며 물었다.

"Absolutely!"

그의 위스키를 받아 마신 위스키가 목을 타고 내려갔다. 잠시 후 뜨거운 것이 올라오며 온 몸에 열기가 퍼지는 듯했다.

"죽이네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구. 힘내렴."

"다이아몬드도 힘내요."

위스키를 건내주었던 다이아몬드​

 

그를 뒤로하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이제는 정말 해가 빨리졌다. 은진이와 밤에는 걷지 않기로 했기에 하루에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하루 이틀이면 무리를 해서라도 걷겠지만 아직은 이주가 조금 넘는 시간이 남아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텐트를 칠만한 자리가 나오지 않아 결국 약속을 또 어기고 밤이 되어서야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산 조금 높은 곳에 텐트를 친 탓에 텐트에서 나와 앞을 바라보니 산의 전경이 다 보였다.

그런데 이게 왠일... 저 멀리 검은 곰 한마리가 미친듯이 달리고 있었다. 물론 우리와는 거리가 멀어 지금 당장은 문제는 안되지만 괜히 걷다가 곰을 만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그래도 일단 곰한데 물려 죽는 것보다 얼어 죽지 않기 위해서 빨리 짐을 싸고 열을 내기 위해 다시 길을 걸었다.

 
 
다시 눈 쌓인 지역이 시작됐다 ​

 

2,500마일 지점을 지났다.

숫자의 의미가 사라진 지 오래됐지만 생각해보니 총 2,653 마일의 PCT이니 165마일(약 260km)를 더 걸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그래도 아직도 많이 남았다. 끝날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드디어 2500마일... 100마일 조금 더 남았으니 대략 200~300km를 더 걸으면 끝이다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다. 작은 눈발들이 얼굴을 때려 바람막이 모자를 덮어쓰고 얼굴을 옷 속에 집어 넣어 고개를 숙이고 걸어보지만 기어코 눈발들은 얼굴을 때렸다.

'길어도 10일, 10일만 버티자...'

내 생에 이렇게 무언가를 지독히 갈구한 적이 있을까?

 
 
낭만적이던 도시의 눈은 산중의 공포스런 눈과는 다르다 ​

 

아무래도 없었던 것 같다.

이 PCT가 도대체 뭐라고...

눈보라가 치는 가운데서도 가방 사진을 찍고 싶었나보다 ㅋㅋ

버티고 또 버텨 살아남은 자는 강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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